요행 바라지 말고 판문점 선언 실천하라
▲ 무기(單단)에 무기(戈과)를 갖추는 戰(전)은 군비를 증강하는 모습. /그림=소헌

“이것 덜이 오뉘라네.”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리고 모두 건물 안으로 들어가두만. 한참이나 있다가 복도가 크게 울리도록 여자 울음소리가 들려와서. 어둑어둑했넌데 기쎄 그 아이덜얼 쭉 빨가벳겨개지구 끌구 나오는 거이야. 내무서 뒷마당으로 데레가넌 모낭이디. 단발머리넌 궁둥이도 작구 다리가 참새 같더라. 두 팔루 가슴얼 싸안구 머리럴 숙이군 오빠 뒤를 따라가멘서 목놓고 울어서. 기것덜이 담장 너메루 사라지더니 총소리가 들리더라. - 황석영 作 <손님>에서 뽑음.

 

캔버스 왼편에는 벌거벗은 임신부들이 공포에 질려 얼굴이 일그러진 채 아이를 몸에 숨겼고, 옆에는 영문도 모르고 흙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있다. 오른편에는 철갑투구를 한 병사들이 그들을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 피카소 作 ‘한국에서의 학살’. 그는 양민학살과 전쟁의 참혹함을 알리기 위해 반전反戰과 평화를 주된 모티브(motive)로 삼았다.

 

두 작품은 모두 6·25전쟁 당시 벌어진 ‘신천 대학살’을 묘사했는데, 황해도 소재 신천박물관은 사건을 이렇게 기록했다. “미제 침략자들은 신천에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재 가루 속에 파묻으라고 지껄이면서, 52일 동안에 신천군 주민의 1/4에 해당하는 35,383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가장 야수적인 방법으로 학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귀축 같은 만행을 감행했다.”

 

포탄희량(抱炭希_) 숯불을 안고 서늘하기를 바란다. 하는 일(행동)과 바라는 일(목적)이 서로 어긋나 일치하지 않다. 文 대통령이 세계 역사상 최초로 백악관에서 열린 명예훈장(미국 군사훈장) 수여식에 참가한 외국 정상頂上이 되었다. 초청인지 불려간 것인지는 모르지만, 무릎을 낮추어 ‘미국 용사의 힘으로 한국이 번영하게 되었다’며 피로 맺어진 한미동맹을 강조했다. 앞선 행보에서는 ‘미국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국립묘지를 방문하여 참배했는데, 누가 제 민족이고 형제인가? 한미연합훈련이 강화되는 조짐 속에서, 지난주 성주군 소성리에는 주한미군 사드(THAAD)기지 공사에 필요한 자재 반입이 재개됐다.

 

 

戰 전 [싸우다 / 전쟁]

 

①_單(단)은 원시적인 무기인 끝이 _(아)처럼 두 갈래로 된 돌팔매다. 이것이 있으면 혼자서도 사냥할 수도 있어 ‘홀로/오직’이라는 뜻으로 전해졌다. ②창끝에 낫이 달린 것처럼 생긴 戈(과)는 고대의 무기로서 전쟁이나 서예의 필법 등으로 쓴다. ③무기(單단)에 무기(戈과)를 갖추는 모습을 한 戰(전)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앞다퉈 군비를 증강하는 모습이다.

 

炭 탄 [숯 / 목탄]

 

①불에 타고 남은 가루인 재(灰회)는 손(又/ナ우)으로 만질 수 있는 불(火화)이다. ②산기슭(_엄)에서 불(火)이 나더니 이내 모든 산(山)을 태웠다. 남은 것이라고는 재(灰)와 숯(炭탄) 밖에 없다.

 

피카소 국내 전시회가 열린다. 여기서 1980년대까지 반미反米 작품으로 정해져 반입금지 목록에 올라 있었던 ‘한국에서의 학살’이 처음 공개된다. 반전을 외치다 졸지에 ‘빨갱이’로 몰린 피카소, 1969년 서울지검 공안부는 ‘피카소 크레파스’를 생산하는 기업인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여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한강토의 평화통일을 위해 3년 전 민족자주 원칙으로 체결한 ‘판문점 선언’을 실천하라. 낙낭대탄(落囊待炭/쇠 불알 떨어질까 봐 숯불 장만하고 기다린다). 살아있는 소의 불알이 저절로 떨어질 리 없다. 노력도 하지 않고 요행만 바라거나 남의 힘을 빌리려는 헛된 짓을 비웃는 말이다.

 

/전성배 한문학자. 민족언어연구원장. <수필처럼 한자> 저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