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19일 아침 '한·미 대북정책 완전조율 하에 다뤄져야'를 한·미 외교·국방 장관 공동성명 기사의 열쇠말로 뽑은 일간지를 집어드는 순간 '완전조율' 네 글자가 발목에 밧줄을 묶은 서커스단의 코끼리를 떠올리게 했다. 코끼리를 길들이는 비밀은 코끼리 발목에 묶인 밧줄에 숨어있다. 서커스단 코끼리는 발목의 밧줄이나 밧줄에 연결된 말뚝이 허술하고 빈약해도 도망가지 않는다. 서커스단 코끼리가 온순해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탓이다.

서커스단의 조련사는 갓 들어온 어린 코끼리 발목에 밧줄을 감고 말뚝에 묶는다. 코끼리는 속박을 벗어나려고 힘을 써보지만 아직은 힘이 부족한 탓에 실패하고 만다. 코끼리는 실패를 반복하고 결국 체념하게 된다. 이렇게 길들여진 코끼리는 다 자라 아무리 힘이 세져도 발목에 밧줄만 묶으면 도망가려 하지 않는다. 조작된 인식에 포획된 코끼리는 허울뿐인 족쇄에 묶여 밀림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된다.

 

#2 지난 10일 공개된 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안의 골자는 올해 13.9%를 인상(1조1833억원)하고 2025년까지 매년 국방비 증가율만큼 인상한다는 것이었다. 이 합의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트럼프가 걷어찬 잠정합의를 그나마 바이든에게 받아내서 다행이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부드러워 보이는 바이든에게도 트럼프 때와 똑같이 당했다는 혹평도 존재한다. 상반된 두 평가 모두 트럼프에 대한 평판과 바이든에 대한 막연한 기대에 기초한 대증적 평가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방위비 분담의 역사적 맥락과 협상 과정을 짚어온 시민사회의 평가와 반응도 둘로 갈린다. 그 하나는 올해 협상이 2019~2020년 트럼프 정부와 협상의 연장선에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현실론에 바탕을 둔 평가이다. 이들은 2020년 트럼프의 50억달러 요구를 방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합의한 13% 인상안과 우리가 제시한 물가상승률이 아닌 국방비 증가율을 매년 인상률에 적용하는 방안을 되돌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동정론에까지 이른다.

반면에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은 그 명칭에 '특별'이라고 들어가 있듯이 1991년에 미국의 요구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5조(한국이 주한미군에 시설과 부지를 무상 제공하고 미국은 주한미군 운영유지비를 모두 책임진다)의 효력을 잠정 보류하고 체결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잠정적이고 특별한 협정이 30년 넘게 지속되는 것은 부당하지 않은가? 그러니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이라는 부당한 족쇄를 벗어버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3 2018년 늦가을 주한미군의 감축설과 방위비분담금 12억달러 설이 찬바람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왔다. 2018년 12월31일부로 종료되는 9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을 대체하여 2019∼2023년에 적용할 10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을 위한 새로운 협상이 시작될 즈음에 넘어온 달갑지 않은 풍문이었다. 이 풍문은 실제로 한·미 협상 테이블에 오른 우리에겐 참 어려운 숙제였다. 태평양을 수차례 오간 협상단은 결국 숙제를 풀지 못한 채 협상 시한인 2018년을 넘겼다. 협상이 무르익어 주한 미군 감축설이 잦아들었고 방위비분담금도 10억달러 정도로 좁혀졌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1조원을 넘길 수 없다고 버티며 힘겨운 줄다리기가 팽팽하던 2019년 1월 백선엽을 비롯한 전직 국방부장관 등 예비역 장성 400여명이 '대한민국 수호 예비역 장성단(가칭)'을 결성하고 정부의 안보정책에 반대하는 성명과 함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보충을 위한 국민 모금운동을 벌이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리고 보수신문들은 “한미동맹의 가치가 9999억원에 불과한가?” “한미동맹의 전략적 가치는 금전적 환산이 불가능하다.” “우리 정부가 사수하려는 1조원은 합리성과 거리가 멀다.” 류의 사설들을 쏟아냈다. 이들이 차고 있는 족쇄는 안보와 한미동맹이라는 명분이 만든 그림자에 가려져 이들은 자신 발에 채워진 족쇄를 인식 못할지도 모른다.

 

#4 우리는 2019년 8월 더위 속에서 “브루클린의 임대아파트에서 114달러를 받는 것보다 한국에서 10억달러를 받는 게 더 쉬웠다”는 동맹국 대통령 트럼프의 자랑을 들어야 했다.

 

/정세일 생명평화포럼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