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일이지만 잊어서는 안될 사건이 있다. 1987년 3월22일 부산에 있는 형제복지원에서 탈출을 시도한 수용자 한 명이 직원의 구타로 숨지고, 35명이 탈출해 복지원의 인권유린 실태를 세상에 폭로했다.

형제복지원은 당시 3000여명을 수용한 전국에서 가장 큰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다. 문제는 부랑인뿐 아니라 길거리 등에서 발견된 무연고자와 장애인_고아_노숙자, 심지어 무고한 일반시민_청소년까지 선도 명목으로 끌고와 불법으로 감금했다. 단지 주민등록증이 없다는 이유로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고, 저항하면 굶기거나 구타했다. 심하게 때려 사망한 경우에는 암매장했다. 시신을 300만~500만원에 의과대학 실습용으로 팔기도 했다. 여성 수용자에게는 성폭행을 가했다. 저지른 만행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유대인을 수용했던 '아우슈비츠' 못지않았다.

게다가 수용자 탈출을 막기 위해 경비원와 경비견으로 철통같이 감시하는 등 교도소나 마찬가지로 운영했다. 형제복지원이 운영된 12년(1975~1987) 동안 수용자 513명이 사망했다. 그런데도 복지원은 정부로부터 연간 20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다. 인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박정희_전두환 정권 때였다.

더 어이없는 것은 사건이 불거진 뒤 복지원 측이 경찰 출입을 막아 수사 진행이 어려웠다. 경찰은 망원렌즈로 복지원을 촬영하는 등 2개월 동안 내사를 벌인 뒤 복지원을 덮쳐 박인근 원장을 구속하고, 검찰은 불법감금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정부훈령에 따른 부랑인 수용'이었다며 박 원장의 불법감금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횡령만 유죄를 인정해 2년6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부랑인 수용은 불법감금에 해당된다며 2018년 검찰에 사건 재조사를 권고했고,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비상상고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1일 아주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비상상고를 기각했다.

이날 피해자 30여명은 대법원 앞에서 “대법원 판결이 너무 억울하다”고 말했다. 1987년 당시 주임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는 “전두환 정권의 법률적 들러리였던 대법관들이 무죄를 선고한 것을 이번 대법원도 유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판결은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통상적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을 정도로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다. 확인된 사망자만 500명이 넘는 이르는 사건의 무게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형제복지원 부지는 매각돼 이후 아파트 등이 들어섰다. 복지원은 단죄를 받기는커녕 결과적으로 막대한 부를 챙겼다. 역사적으로 악이 심판받지 않은 경우가 수두룩했다는 점을 위안 삼아야 하는지, 아니면 사법 정의의 모호성을 탓해야 하는지 헷갈린다.

 

/김학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