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막어촌계에서 알려드립니다. 오늘은 동죽 작업을 실시하니 아홉시까지 어촌계 사무실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기다리던 조개잡이를 한다는 기별이다. 회사원이 회사 가듯 우리는 방송을 듣고 갯벌에 조개잡이를 하러 갈 채비를 한다. 계절에 관계 없이 긴 소매옷에 긴 바지를 입고 수건과 모자로 머리와 얼굴을 감싸고 조개 담을 마대자루를 허리에 매고 까만 전화줄로 엮은 종태기를 들면 준비 끝. 종태기 안에는 네 개의 발이 있는 호미와 바닷물을 퍼 흙 묻은 조개를 닦을 작은 양재기와 빨간 고무장갑을 담았다.

갯벌로 향하는 마차에는 연세 있는 어르신과 아낙네들이 타고, 남자들은 약 3km 되는 거리를 걸어들어갔다.

십여대 되는 마차가 사람들을 태우고 일렬로 가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자원 보전을 위해 자리를 옮겨가며 작업하기 때문에 그날 작업할 장소는 작업지도원이 지정해준다.

마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조개를 잡을 자리를 선정하고 본격적으로 조개잡이를 시작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개잡이는 살포시 앉아서 호미로 하나씩 하나씩 조개를 캐는 모습일 것이다. 동막갯벌은 그렇지 않았다. 자리를 선정하자마자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올리고 엎드려, 한 손은 호미로 갯벌을 긁어대고 다른 한 손은 밖으로 나온 조개를 밀어냈다. 호미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동죽이 많았기 때문에 하나하나 캐는 게 아니고 긁었다. 한 종태기에 15~20kg 정도 들어가기 때문에 네 종태기 정도 담으면 그날 작업량이 되는 것이다.

가끔 입찰이 들어오면 상합과 가무락도 잡았다. 가무락은 가까운 무른뻘에서 서식하고 상합은 동죽 서식지 보다 단단한 혼합뻘에서 서식한다. 짭쪼름하면서도 단맛이 날 정도로 맛있었으며 두어개 먹으면 시장기를 달랠 수 있었다. 동막갯벌에는 대맛이라고 하는 맛조개와 소라벌에서 만날 수 있는 황굴맛, 참맛, 소라, 피조개 등도 많았다.

봄이 되면 몇몇 아낙네들은 허리에 고무다라를 매달고 맛싸개라는 철꼬챙이로 맛조개를 잡기도 했다. 매일매일 잡아내도 많았던 맛조개다. 또한 낙지철이 되면 남자들은 낙지통을 매고 낙지를 잡았다.

경륜이 많은 사람은 하루에 백 여마리 잡았고, 필자는 몇 십마리 잡았다. 건강망을 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그물에는 숭어와 전어, 꽃게 등 다양한 어종이 잡혔다.

그러던 어느 날. 갯벌에 죽은 동죽 껍데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죽은 껍데기는 하얗게 쌓여 갔고 어민들은 이유를 알지 못했다. 조개잡이는 중단되었고 생계에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농사를 짓던 집도 있었지만 바다에 생계가 달려 있었던 집들이 더 많았다. 연수신도시 개발과 남동공단부지 매립 과정에서 발생한 흙탕물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판단해 주민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전문가들이 진상조사를 진행한 결과, 공사 중에 흘러들어온 진흙물에 조개가 폐사되었다는 판정을 받아 조금이나마 보상금을 지급받았다.

그러던 중 송도국제신도시를 개발한다며 갯벌 매립이 결정되었다. 어민들은 인천시에 진정서도 보내고, 4개 어촌계가 합동으로 바닷가 근처에서 천막농성도 진행했으나 매립은 진행되었다. 매일 아침 들려오던, 조개작업을 알리는 방송 소리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많았던 동죽을 이제는 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바다를 생계의 터전으로 평생 살아온 어민들은 생계가 막막해 하나둘씩 정든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서해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이며 수많은 생명들의 서식지이자 누군가는 생계를 이어가던 곳이었다. 보전 가치가 있는 갯벌이 개발로 매립되고 새로운 신도시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호미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어족자원이 풍부했던 동막갯벌은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나마 남은 갯벌마저도 훼손될 처지에 있으니 안타까움이 켜켜이 쌓여간다.

정태명

전 동막어촌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