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롯 열풍은 코로나만큼 강렬하다. 수십 개가 넘는 TV채널을 돌리다 보면 하나 건너 트롯방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트롯의 이런 붐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 또한 다양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공개오디션이라는 포맷으로 철저하게 출연자들의 실력을 검증했다는 점이다. 특히 단편적인 평가가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출연자들의 실력을 평가한 점이 주효했다.

또한 이 과정에 많은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그들의 주관적 판단을 객관화하여 집단지성으로 새로운 스타를 선발한 결과 그들에게 공감하는 팬들이 확고하게 확보되었다는 점이 성공 비결이라 할 수 있겠다. 새로운 스타들의 탄생도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러한 프로그램의 포맷이 주는 메시지는 더욱 의미가 크다. 이미 2002년 아무런 연고도 없던 히딩크 감독이 오로지 실력만으로 대표팀을 구성한 결과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궈낸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시스템을 아직까지 널리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불협화음이 난무하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불어온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의 광풍은 다시금 이런 시스템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많은 분야에서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조직의 성과를 기대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다. 특히 정치권의 공천제도는 그 자리가 주는 중요성에 비하면 너무나 주먹구구식으로 이루어진다. 선거를 몇 달 앞둔 시점에 10여명 남짓의 공천위원회가 구성되고 몇 장의 이력서와 짧은 면접을 통해 공천이 이루어진다. 객관적 평가를 한다는 이유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지만 매우 단편적이다.

다수가 장기간에 걸쳐 대상자의 비전과 능력 등을 까다롭게 검증할 수 있는 플랫폼을 운영하는 정당이 과연 있을지 궁금하다. 현재와 같은 단편적인 공천과정에서 은밀한 개입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런 시스템으로 확실한 인재를 널리 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숨어 있는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고 낙후된 정치를 답습하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얼마 전 야당 대표가 미스트롯 방식을 언급하며 공천방식을 개선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렇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수많은 지원자금의 대상을 선정하는 방법도 그다지 다른 것 같지 않다. 정부 지원자금만 쏙쏙 빼먹는 전문기업이 존재할 정도이니 본질보다는 선발과정에 익숙한 기업들이 혜택을 받아가는 것은 공천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질가치보다는 선발과정의 공정성만을 강조하다보니 발생하는 부작용이지만 지금의 제도로는 이런 비합리적인 지원이 반복될 뿐이다. 저출산 대책예산이 수십 조원이 쓰였다는데 저출산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악화일로다.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사회 전반이 이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물결이 마치 봇물 터지듯 차오르고 있다. 누구나 뜻과 실력을 겸비하고 다수의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과거와는 다른 길이 열리게 된다. 개인 미디어가 그렇고, 플랫폼이 그렇다. 이런 새로운 인프라는 개인을 주체로 인식한다. 수많은 개인들 중에 철저하게 준비된 프로세스를 통해 심도 있게 검증되어, 공감을 크게 유발한 개인들 간의 집단지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를 창조해 내는 원동력이 된다.

이런 사회가 바로 우리에게 다가온 지성사회의 모습이다. 지성은 답이 없는 질문을 끊임없이 되물으며 인간과 자연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유일한 능력이 바로 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지성사회는 이러한 지성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성인이 주류가 되는 세상이다.

20세기 위대한 사상가였던 칼포퍼가 주장했던 열린사회처럼 고도화되어가는 개인들에게 이성적인 비판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사회시스템이 갖추어져야 사회는 새로운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 하나의 이념을 강요하고 건설적인 비판의 기회가 통제되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가치창조는 불가능하다. 이 세상의 모든 분야 특히 아직 분야라고 특정하기도 힘든 그런 아이디어까지를 포함해서 자유로운 상상력과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가능한 열린사회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이나 트롯 신드롬이 보여준 이런 시그널을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 알아채지 못하고 여전히 학연 지연에 의존하고 낡은 이념에 함몰되어 미래의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전하진 Siti Plan 대표이사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