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외세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채 2020년을 보내고 있다. 발목에 족쇄를 차고 있는 우리의 가련한 자화상은 다음 두 가지 사례만으로도 충분히 대변된다.

12월15일에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에서는 이재강 경기도평화부지사가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며 삼보일배를 했다. 그는 도라산전망대에 집무실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유엔사의 불허로 무산되어 임진각 바람의 언덕 위에 임시집무실을 설치하여 운영하기도 했다.

우리 땅임에도 불구하고 외세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여실히 증명되었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으로도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표현의 자유 침해' 운운하며 우려를 표명했고 미국 국무부도 “북한으로의 자유로운 정보 유입이 계속 이뤄져야 한다”며 비판하고 나서는 등 미국 일각에서 반발이 노골화됐다. 우리 민족의 갈등 해소를 위한 조치가 그들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외세, 곧 미국의 반발과 간섭이 눈에 띄게 노골화된 것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의 대결에서 미국이 수세에 몰리면서부터다. 그 전까지 미국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한국 내부의 친미 집단이나 인물들을 통해 그 의지를 관철해 왔다. 그러나 북한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획기적인 대화 조치를 취하면서 한반도의 평화가 무르익자 미국은 당황하면서 방해자로서의 본색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2017년 11월29일은 북한이 화성15호를 시험 발사하고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날로서 이날을 기점으로 미국의 태도는 사뭇 달라졌다. 전쟁도 불사한다던 트럼프 대통령은 태도를 바꾸어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며 대화에 응하게 되었다. 미국이 유리한 위치에서 진행돼 오던 오랜 대결 양상에 종지부를 찍고 대등한 힘의 대결로 전환된 것이다.

2018년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올림픽 개최 축하와 북측의 참가 의사를 밝히면서 그간의 경색된 분위기가 평화적 분위기로 반전되었다. 4월에는 남북의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고, 6월에는 싱가포르에서 북미 두 정상이 만났다.

9월에는 다시 남북 정상이 평양에서 회담을 하고 백두산에 함께 올랐다. 이어서 휴전선 감시초소(GP) 폭파, 전사자 유해 공동 발굴, 지뢰 제거 등 종전과 평화를 위한 행보에 속도가 붙었다. 그러나 이에 놀란 미국이 한미워킹그룹을 만들어 남측을 옥죄면서 더 이상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미국 내부에서는 기득권을 가진 주류 세력이 트럼프 대통령을 옥죄면서 북미 사이의 대화를 막고 나섰다. 수세에 몰린 미국이 내부 균열을 드러내는 역사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회담은 결렬되었다. 북한은 이에 대응하여 핵무력 증강으로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남측은 미국의 제재에 무기력하게 끌려가기만 하다가 2020년 6월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북측의 조치에 충격을 받고 서둘러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반북단체들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등 나름대로 성의를 보였으나 근본적인 전환, 즉 외세로부터 독립된 자세를 보이지는 못했다.

세계적인 격변의 소용돌이에서 결국 남측은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한 채 2020년을 보내고 있다. 이재강 평화부지사의 노력과 대북전단살포금지법 국회 통과가 그나마 이전의 적폐 정권과 다른 모습이라 할 것이다.

2018년의 전변으로부터 3년이 흘러 2021년을 바라본다. 새해에는 또 다른 양상의 북미 대결이 펼쳐지겠지만 그 방향은 정해져 있다. 미국은 우리민족을 결코 이길 수 없다.

시간은 이렇게 도도히 흘러가고 있는데, 외세의 굴레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 남측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발목을 잡고 있는 외세를 차 버릴 각오와 결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내일이면 늦을 수도 있다.

/지창영 평화협정운동본부 집행위원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