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인천세브란스병원이었던 건물(현 참사랑병원).

30여 전 이맘때 복막염 수술을 했다. 일요일 저녁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소화제를 먹었지만 다리를 펼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필자를 부축하고 큰길로 나간 부친은 급히 택시를 잡았다. “빨리 세브란스로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한시가 급한데 서울 신촌세브란스로 가는 게 아니었다. 서구 가정동에 있던 인천세브란스병원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땐 승객이나 운전기사나 '세브란스'하면 그곳으로 통했다.

단순한 맹장염인 줄 알았는데 심각한 복막염이었다. 열흘 동안 입원했다. 병상에서 성탄 시즌을 보냈다. 당시에는 성탄 전야에 교회마다 '새벽송'이란 이벤트가 있었다. 병원 주변의 교회 청년들이 환자와 의료진을 위로하기 위해 선물을 한아름 들고 와서 캐럴과 찬송가를 불러주었다. 새벽송은 초저녁부터 말 그대로 새벽까지 이어졌다. 세브란스와 인연을 맺은 특별한 성탄절이었다.

인천세브란스병원은 1983년 3월 경인고속도로변 가정동 골목에 개원했다. 주변의 공단 노동자들을 위한 인천산업병원으로 출발했다. 입원 기간 동안 산업재해를 당한 노동자를 싣고 온 응급차 사이렌을 자주 들었다. 1999년 9월 인천세브란스는 “누적 적자와 대학병원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 못한다”는 이유로 자진 폐업했다.

세브란스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인천에서 세브란스가 거론되었다.

지난 2006년 연세대 송도캠퍼스 조성과 함께 세브란스병원 건립 청사진이 발표되었다.

첫삽을 뜬다만다 하며 지지부진하다가 최근 인천시와 연세대가 송도국제도시에 500병상 이상을 갖춘 송도세브란스병원을 2026년 개원하기로 합의했다. 필자의 복부에 새겨진 세브란스의 메스 흔적은 이제 희미해졌다. 구한말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의료선교사 세브란스의 정신이 인천 곳곳에 깊게 새겨지길 기대한다.

/유동현 인천시립박물관장 colum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