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섭 정치2부장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Deus lo vult)”

1095년부터 1291년까지 200여 년간 8차례에 걸쳐 유럽의 기독교와 서아시아의 이슬람이 맞붙는다.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이슬람에 점령당한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교황은 신의 대리인으로 절대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해야 했고, 영주들은 새로운 땅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전쟁특수에 상인들은 더 많은 이익을 챙겼다. 역사는 이를 추악한 전쟁으로 기록한다.

1219년 제5차 십자군은 이집트 원정에서 대패하며 위기를 맞는다. 이때 거의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저 멀리 아시아 동쪽에서 사라센을 쳐부수고 십자군을 구원하기 위해 대군이 진격해오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유럽인들은 이들을 사제왕 요한의 군대라고 믿었다.

이 이야기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는지는 금세 드러났다. 동방에서 들려오는 소문은 사제왕 요한도 아니었고, 그의 아들 다윗 왕도 아니었고, 그들을 도우러 진군해오는 기독교도 부대도 아니었다.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인도한 그들의 정체는 바로 몽골족이었다. -피터 프랭코판의 '실크로드-세계의 새로운 역사' 중에서

지금 세계를 압축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꼽아본다면 분열과 고립이 아닐까한다. 슈퍼 파워 미국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며 세계와 담을 쌓고 있다. 배타적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했고, 국경을 따라 둘러친 장벽은 한층 공고해졌다. 유럽 역시 봉쇄주의가 강화되는 추세다. 더 강력해진 통제와 분리 정책이 아프리카와 중동 이민자들을 막아서는 게 서방의 현실이다. 단순히 벽만 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방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힘의 논리가 더욱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중국의 사스 보복으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봤고, 방위비 5배 인상을 요구하는 혈맹 미국의 거친 협박을 눈으로 지켜봤다. 강제징용자 배상판결로 시작된 일본의 경제보복과 북한의 핵 위협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경제적 우방인 미국과 경제적 우방인 중국의 갈등이 점차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우리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7월24일 미국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한 연설에서 중국 시진핑 주석을 향해 “실패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신봉자”라고 규정했다. 그는 “중국을 맹목적으로 포용하는 낡은 정책은 실패했다”며 중국에 반대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동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국(화춘잉 외교부 대변인)도 미국의 행동을 '비부감수'(자신의 역량은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큰소리치는 것을 비유)에 빗댔다. 그러면서 “글로벌 세계에서 중국을 상대로 십자군 전쟁을 개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천 년 전 악명을 떨쳤던 동서양 간 십자군 전쟁이 21세기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코로나19는 전 세계의 장벽을 더욱 높여 놨다. 국가와 국가 간에도, 사람과 사람 간에도 이젠 장벽이 일상화된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남북관계에 대해 소문과 희망고문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다. 4년 전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가 북한과 협상에 나설 때 우리는 모두 환호했다. 미국이 북한과 평화협상만 잘 진행해 준다면 남북관계는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고 통일도 멀지 않았다며 말이다.

하지만 국제정치의 현실은 냉정했다. 우리의 주변국 모두가 한반도 통일을 반기지 않았고, 특히 일본의 방해는 집요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트럼프를 누르고 새로운 미국 대통령으로 떠올랐다. 또 다시 헛된 소문과 희망들이 들려온다. 얼마 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송영길 국회 외교국방위원장의 얘기는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송 의원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적어도 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의 운명의 문제이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미국인 중에 우리처럼 절실하게 한반도 문제를 고민하고 공부한 사람이 몇 분이나 있겠느냐. 그래서 한반도 문제는 같은 동맹국인 미국의 정치인과 미국의 의사결정권자를 설득하고 공부시키고 이끌어가는 자주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1세기 무한 경쟁시대. 누가 우방이고 적군인지, 누가 사라센이고 몽골인지 우린 알지 못한다. 누구 편에 설 것인지 강요당할 시간이 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한반도 문제는 우리가 먼저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면 대신 해결해 줄 나라는 없다는 것이다. 한반도에도 이념과 신념 대신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가 오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