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찬 전교조 인천지부 중등동부지회장

잠시 1971년으로 돌아가 전태일 기념관을 방문했다. '보고 싶은 얼굴'이라는 전시에 인천의 작가가 참여해 둘러볼 수 있었다. 종로3가역에서 가까운 청계천이 있는 곳에 자리해 있었다. 참여 작가의 초대로 코로나 19로 휴관 중이지만 인터뷰가 필요한 촬영을 위한 사람과 동반하여 기념관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올해는 전태일 열사가 분신 항거한 지 50주기가 되는 해이다. 기념관은 개관한 지 2년이 되어 전태일의 마음으로 함께 걸어가신 수많은 노동자들 권미경, 김경숙, 김진수, 박복실 등 기억해야 할 이름들의 삶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 전시를 한 것이다.

인천 또한 노동을 대표하는 도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농업박물관은 존재해도 노동박물관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쉬운 일이다. 동일방직 똥물사건은 1978년 2월 21일에 인천광역시 동구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에서 벌어진 여성 노동자에 대한 탄압 사건이다. 2017년 문재인 정부 수립 후 정신적 손해배상에 대한 국가청구 금지가 위헌으로 판정되어 2018년 12월 서울고법 파기환송심에서 국가배상 판결을 받았다.

다시 전태일 -열악한 일터,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겪어야 했던 현실은 지금도 진행형이라 할 수 있겠다. 택배 노동자의 죽음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생존을 위한 노동은 가슴을 저민다. 일할 수 있는 권리, 일하면서 죽지 않을 권리, 행복하게 살 권리는 누구나 보장 되어야 한다.

제자들이 크게 잘 되는 것보다 일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며 자신이 누릴 행복한 삶을 찾았으면 좋겠다. 물론 엘리트가 되어 세상의 꼭 필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다수 학생들은 평범한 삶을 영위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평범 이하의 비루한 삶을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무 젊은 나이에 기회를 박탈하지 말아야 한다. 꿈을 가진 사람으로 키우는 것은 너무 낭만적일까? 그래도 나는 꿈이 있는 교실이 모토이다.

우리가 사는 인천은 이주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가 많이 생활하는 곳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이루어졌다 한들 임금의 차별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중에 학교는 정규직의 유고 즉 병가나 파견 등의 사유로 기간제 교사가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보건교사, 영양교사, 사서교사, 상담교사들 중에 기간제 교사들이 다수 단위 학교에 존재한다. 그 외 교육복지사, 조리종사원, 행정실무원 등 공무직 및 비정규직에 속하는 분들이 학교 안에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또 학생안전을 위해 지킴이 역할을 하시는 분과 위탁 경비실 요원으로서 숙직 근무를 하는 분, 학생들의 화장실 및 계단을 청소하는 분도 계신다. 여러 고마운 분들이 어울려 학교는 배움의 공동체이다. 학교의 관리자는 교장과 교감, 행정실장까지 포함하면 세분이다. 서로의 공감대도 있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 하루 8시간 이상을 근무하면서 서로를 위한 존중과 배려를 위한 소통이 없으면 스트레스가 많은 공간이라고 볼 수가 있다.

20세기를 지나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21세기 학교는 많이 변화했지만 아쉬움이 있는 학교가 존재한다. 코로나 19가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으며 삶의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그 중에 학교의 변화는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 온라인과 대면 수업을 번갈아 해야 하고 평가나 등하교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래서 교사는 힘이 든다. 학교 교육의 목적이 선발에 맞추어 제 기능을 못하는 것에서 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은 대학의 수시전형에 수십대 일의 경쟁률로 벌어 들이는 전형료는 추측컨대 수억대가 될 것이고 우리의 아이들을 대학에 보내면 학비는 도대체 몇 천만원이 드는지 모르겠다. 우리 노동자와 시민이 평생을 일하면서 교육비에 높은 비용을 지출해야 한단 말인가?

결론을 말하자면 지난 시기의 건강한 정신과 담론을 계승하고 새롭게 그려나가야 할 미래교육은 학교나 교육청, 교육부가 아니라 인천시민인 우리가 싹 틔우고, 물주고, 가꾸어 나가야 할 일이다. 경쟁으로 인해 생겨난 학벌 사회도 걷어내고 심각한 대학 입시도 변화해야 한다고 평범한 우리 시민이 요구해야 한다. 특목고나 다른 지역에 우리의 아이들이 가서 힘겹게 공부할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배우고 인천에서 살며 배우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익히는 세상이 오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