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지방자치단체에 '국어책임관'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외국어•외래어가 난무하는 세상인 데다, 형식적으로 도입한 제도라는 측면이 있으니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국어책임관은 민간 영역에서 외국어가 남발되는 현실에서 공공기관부터 우리말을 제대로 쓰자는 취지에서 도입했지만 존재가치가 미미하다.

2017년 개정된 국어기본법에 따라 경기도 31개 시•군은 국어책임관을 의무적으로 두고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공공기관의 홍보나 국어 담당 부서장 또는 이에 준하는 직위에 있는 사람을 국어책임관으로 임명하게끔 돼 있다.

국어책임관은 기관의 정책이나 홍보자료를 시민들이 알기 쉬운 용어, 즉 한글로 순화하거나 맞춤법 점검, 우리말 사용을 장려하는 시책을 세우는 등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있으나 마나 한 직책이 된 지 오래다. 국어전문가를 뽑아 자리에 앉히는 것이 아니라, 기존 직원에게 일을 맡기니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해 한글과 관련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지자체는 드물다. 공문서에 되도록 한글을 쓰라는 것조차 강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국어진흥조례'를 제정한 지자체가 경기도에 9곳 있지만, 드러나는 성과는 거의 없다.

지자체 도시브랜드에 외국어가 무분별하게 등장하는 현실은 국어책임관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Fantasia 부천 ▲The Way to Better Living(길이 열리는 화성시) ▲두드림(DO DREAM) 동두천 ▲FULL LIFE GIMPO(김포) ▲A•R.•T ICHEON(이천) 등이 대표적이다. 공공기관에서 외국어 사용은 부지기수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 결과 경기지역 공문서에서 573개의 외국어가 사용됐다. B2BC, G-FAIR, RE&Up처럼 개념이 모호하고 시민들이 쉽게 알 수 없는 단어도 등장했다.

한글날(9일)을 맞아 또 다시 한글의 우수성을 들먹이며 한글 사용을 권장하는 구호 및 행사가 난무하고 있다. 언제까지 '평소에는 외국어 선호, 한글날에는 국어사랑'이라는 행태가 되풀이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