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규 인천시설공단 이사회 의장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머니' 라는 말에 그리움•미안함•회한이 담겨진다. 코로나 방역 때문에 고향방문을 미뤄야 했던 이번 추석은 더욱 그렇다. 팔구십 대 노모들은 일제치하에 태어나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의 거센 풍랑을 온몸으로 맡으며 자식들을 품어 키우고 교육시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분들이다.

필자 어머니도 다르지 않다. 칠남매 장남이지만 직장생활을 이유로 어머니 곁을 떠나 살아왔다. 이번처럼 한 달 넘게 부모 곁에서 모시기는 처음이다. 물론 그동안 잠깐씩 머물다 가긴 했었다. 차라리 이번 기회에 모시고 살까 생각도 했다. “내 한 몸 같으면 너희집이나 어디 복지시설이라도 들어가고 싶다. 치매가 온 네 아버지, 어디가나 천덕꾸러기로 설움당할 것 아니냐. 네 아버지 살아있는 동안은 내가 수발해야지 어딜 가겠냐”고 하신다. 장남 입장에서 죄인 같아 가슴이 메인다.

안부전화 때마다 “살아 보니까 건강이 제일이더라. 여기는 걱정 말고 너희들이나 건강하게 잘 살아라. 그게 효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믿고 때때로 안부전화하고 용돈 좀 보내드리는 것으로 자식노릇 한 것 아닌가 했었다. 오랜 농사일로 허리가 구부러지고 무릎관절염으로 지팡이 보행기에 의존해보지만 조금만 걸어도 통증으로 주저앉으신다. 매 끼니마다 밥보다 많은 약을 드신다. 그러면서도 자식들 걱정할까봐 내색을 안하신거다. 병원에 가자면 “92년 동안 써먹었으니 여기저기 고장날 때도 됐다. 병원에 간들 뭐 달라지겠냐”고 하신다.

“아이고 니희들 클 때 왜 그렇게 가난하고 먹을 것 없어 굶겼는지 배고픈 설움이 제일 크다는데… 미안하다.” 우리 집은 바닥에 떨어진 밥알도 주워먹는다. 어머니 따라 배운 것이다. 틈만 나면 중얼중얼 기도하신다. 자식 손자 식구들 건강하고 하는 일 잘되게 해달라고 축원한다. 특히 명절 차례나 누구 생일 때면 유달리 기도가 길어져 식은 음식 먹는 게 우리 집 관습이 됐다.

이 땅의 어머니들은 작은 성자시다. 금쪽같은 내 새끼들 좋고 새로운 것만 물려주고 싶어 고통을 감내하고 베풀기만 한 성자시다. 이 성자도 노후를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다. 현실은 가족 모두가 벌어야 사는 시대가 됐다. 실버촌•요양원•복지시설에 몸을 의탁하는 게 대세가 됐다. 그래도 어머니들은 말한다. “우리 자식들이 너무 바빠 내가 원해서 여기 들어왔어. 자식들한테 짐이 안되게 빨리 죽어야 할 텐데…”

무릎이 아프고 근육이 풀리는 변실금 때문에 변이 흘러나온단다. 미안해하며 화장실 구석에 숨겨 놓은 냄새나는 내의를 찾아 손으로 문지른다. “성자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제 곁에 계셔주셔서.”

이번 추석에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한 자식 분들에게 “부모님들은 당신을 가슴에 품고 사신다”는 말로 작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