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정원 속에 위치해
제자리지만 지나치기 쉬워
전쟁은 '기념' 이 아닌 '기억'의 영역이다. 상처는 아물어도 흔적은 남는 법, 그렇기에 더듬고 되새겨 다시는 전쟁 상흔의 피해를 보지 말아야 한다.
1950년 6월25일. 한국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 양상을 보였다. 이념의 간극을 여과 없이 보여준 6·25 전쟁은, 초반 파죽지세 북한군을 막아내기도 벅찼다. 풍전등화 속 낙동강을 사이로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6·25전쟁의 양상을 바꿔놓은 대전투. 바로 인천상륙작전이다.
전쟁의 핏물이 씻겨진 70년, 2020년 9월의 인천은 평화롭다. 코로나19에 잠식된 도심은 눈에 보이는 전쟁보다 더 위험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인천상륙작전은 ▲월미도 제압(그린비치, 녹색해안) ▲인천항 상륙(레드비치, 적색해안) ▲인천 남동부 상륙(블루비치, 청색해안)에서 이뤄졌다.
적색해안은 평소 월미도를 향하는 차들과 인천 8부두 주변을 오가는 대형 화물트럭으로 늘 분주하다.
14일에도 적색해안 표지석이 놓인 동구 만석동 대한제분 앞 '북성포구' 조형물 주변은 차들로 붐볐다. 해안지대는 대한제분에 가로막혀 상상할 수 없지만 인천상륙작전 기념 표지석과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가 세워졌다.
또 '맥아더 길'이란 표지석에는 월미공원부터 자유공원 맥아더 장군 동상까지 약 1.9㎞를 걸을 수 있는 구간이라 강조했다. 이곳에서는 작전 당일 오후 만조가 되면서 미국 5해병연대와 국군 해병대 1연대 제3대대가 오후 5시33분 상륙했다.
그린비치 표지석은 월미도를 찾으면 선착장 입구에서 만날 수 있기에 인천상륙작전을 많은 이가 기억하는 장소일 테다.
청색해안을 기억하는 표지석이 두 곳에 세워진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언덕 위 우뚝 선 용비도서관에 눈길이 머물 뿐 밑동의 소소한 정원 속에 자리한 청색해안 안내석은 지나친다.
낙섬사거리와 이곳에서 약 1㎞ 떨어진 미추홀구 용비도서관 앞이다. 경인고속도로와 제2경인고속도로 중간 지점으로 인천 물류의 대동맥 사이에 놓인 청색해안 조형물과 달리 용비도서관 앞은 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청색해안 상륙 당시 낙섬까지는 염전의 제방으로 연결돼 있었다. 이 비석은 1980년 인천상륙작전 30주년을 기념해 건립했다가 상륙지점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6·25 전쟁 기념사업회'는 “당시의 청색해안과 지금의 위치는 녹색해안과 적색해안에 비해 지형적 변화가 크기 때문에 표지석과 비석 위치 모두 청색해안 실제 상륙지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글·사진 탐사보도부=이주영·김원진·이창욱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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