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훈 경기동부보훈지청장

여름 휴가에 무엇을 할까?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거나 평소에 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해 볼 수도 있겠다. 최근 코로나19와 물난리로 외출이 꺼려진다면 호캉스나 홈캉스를 즐기며 조용하게 보낼 수도 있다.

그런데 8월은 휴가철일 뿐 아니라 중요한 기념일이 있는 달이기도 하다. 8월15일은 일제의 억압적인 통치에 맞서 우리 민족이 독립을 쟁취했음을 기념하는 광복절이다. 경기동부보훈지청은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용인지역 독립만세운동의 선구자들을 발굴해냈고, 그들 중에는 올해 광복절을 계기로 포상을 받게 되실 분들도 계신다. 올해 광복절 75주년 및 봉오동·청산리 전투 전승 100주년을 맞은 만큼, 그 의의는 더욱 특별하다.

독립유공자들의 헌신에 대해 감사하고 예우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러니 이번 휴가철에는 느긋한 시간을 즐기면서도 의미를 찾는 '슬기로운' 휴가생활을 계획해 보면 어떨까?

우리 지청 옆에는 근처 주민들이 나들이를 위해 많이 찾는 마북근린공원이 있다. 공원의 옆에는 민영환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싱그러운 숲길을 걸어가다 자연스럽게 방문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민영환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의 체결에 반대하여 죽음으로 항거하였으며, 자결한 자리에서는 대나무가 자라났다고 한다. 단정하게 조성된 묘소를 둘러보며 한번쯤 경건한 분위기에 젖어 진지하게 사색해 보기 좋은 장소다. 내 주변에 있는 이러한 공간들을 방문해 독립유공자들의 흔적을 더듬어 본다면 더욱 의미있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녹음이 우거진 산길의 푸르름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면 남한산성 방문도 뜻깊은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는 아쉽게도 역사의 향기를 따라 걷는 '나라사랑 성곽투어' 행사는 개최하지 못했지만, 폭우가 잠잠해진 후에는 남한산성 탐방코스를 따라 녹음이 우거진 길을 걷고 인근의 만해기념관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만해기념관은 독립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담은 시를 통해 일제에 맞섰던 한용운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원래 1981년 서울 성북동의 심우장에 개관하였으나, 현재는 호국영령들의 얼이 서려 있는 남한산성에 옮겨져 있다.

안성 3·1운동기념관에 들리면 지난달 개막한 특별기획전 '감동'을 만나볼 수 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광복까지의 흥미로운 소장품들을 둘러본다면 독립을 위해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에 대해 천천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여기에 소개한 장소들이 아니더라도 혹시 우리 집 근처에 내가 잘 모르던, 독립운동과 관련된 의미있는 공간이 숨겨져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전례가 없는 긴 장마로 우울함을 느낄 수도 있는 요즈음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언젠가 반드시 끝날 것을 알고 있다. 독립유공자들이 신념을 잃지 않고 뜻을 관철했던 것도, 광복의 때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의연한 자세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면, 스스로 '슬기로운' 휴가생활이었다고 평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