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흔히 반만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반만년인 500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우리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근거일 것이다. 아득한 고조선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통일, 발해, 고려, 조선, 대한민국에 이르도록 우리를 규정하는 몇 가지 말이 있다.

정신사(精神史)로는 홍익인간, 동방예의지국이 대표적이다. 사회 경제적으론 농업국가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나라가 됐다. 지정학적으로는 반도국가이며 4대 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다. 혈통으로는 단일민족이자 분단국가다. 현대적 정치제도는 도입된 지 불과 70년 됐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반만년 역사에 거대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대략 150년 전부터 시작됐다. 반만년의 극히 일부분인 약 150년 만에 급격한 시대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조약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급속도로 변화시켰다.

한반도는 중국문화권이며 거의 모든 영역에서 중국과 연관돼 있었다. 4000여년에 달하는 중국과의 교류는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우리를 규정했다. 우리 민족은 그런 사회 문화 환경에서 배우고 성장하고 생활을 영위했다. 우리의 의식과 문화와 형식이 모두 중국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모든 사회제도와 지식과 상식 등이 중국과의 관계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1876년 이후 우리는 제국주의를 접하고 일본 식민지를 거쳐 글로벌 사회로 접어들었다. 4000년 이상 지탱해온 중심축이 변화하면서 이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가 들어오고 일제 식민사관이 형성되고 서구 유럽 사상이 들어왔다. 일본과 미국으로 이주하는 국민이 생겨났다.

일본에는 반강제적으로 보내지고 미국에는 새 삶을 찾아 자의적으로 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공부하러 동경제대나 미국에 유학을 간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 학계에 미국 박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렇듯 우리는 불과 150년 만에 국내외 모든 요소가 미•일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모든 패러다임이 바뀌게 됐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정치구조와 사회 상식을 바꾸었다. 중국과 관련된 것은 모두 낡은 구습이 됐고 일본, 미국 등 서구사상에 관한 것은 현대적이며 신문물이 됐다. 이러한 과정에 앞장선 인물들을 민족주의자, 계몽주의자, 미•일 예찬론자, 서구사상 사대주의자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환의 시기는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시대의 중심축이 이동한다는 것은 변혁과 희생이 뒤따른다. 특히 급격한 변화는 무리수를 낳기 마련이다. 구한말 동학과 집권층을 잔인하게 진압하며 등장한 식민통치를 통해 친일 정신이 정착됐다.

망국의 한을 품은 절명(絶命)과 의병활동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일어났다. 독립운동이 들풀처럼 일어나고 결실을 보려는 순간 일본이 항복했다. 이후 6•25 동족상잔과 독재를 통해 미국 자본주의가 자유 민주주의로 우리 사회를 점령했다. 이 과정은 자주적 민족정신과 고유한 전통정신을 고수하는 흐름을 탄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망하게도 거대한 제국주의 앞에 스러져 갔을 뿐이다. 독립운동 진영도 아시아권 구대륙과 미국이 중심인 신대륙의 입장 차이가 선명했다. 급기야 저울추는 기울어졌다. 식민지와 미군정을 거치며 한반도의 정치와 사회제도는 중국을 떠나 미국 영향권으로 옮겨갔다. 미국 중심의 사회로 급속히 편재돼 간 것이다. 이에 모든 대한민국 국민은 유구했던 과거사와 이별하게 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야 했다.

그 과정은 엄혹한 세월이었다. 수용과 적응력이 관건이었다. 낙오하면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한마디로 불평등과 양극화는 심화돼 갔다. 우리의 본래 역사를 자랑하던 모습인 공동체는 사멸해 가는 중이다. 덩달아 지극한 정신과 고절한 품격은 빛을 잃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사상의 편차와 사회적 입지에 따른 갈등은 인고의 세월도 소용없이 심해진다. 이러한 시대의 변천사 속에서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 발전과 번영을 위해 어떤 대비와 실천을 해야 할 것인가?

 

 

서한석 경기테크노파크 전략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