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화(醇化)는 '잡스러운 것을 걸러서 순수하게 함'이란 뜻으로, 국어 순화는 한글전용체의 문체 순화 운동으로 시작됐다.

이후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강압적인 외세적 동기에 의해 일본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사용해야 했기에 광복 이후 국어 순화 운동은 자연히 일본어와 일본식 한자어를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1976년의 '국어 순화 세칙'에서 “국어 순화는 발음, 어휘, 문법, 맞춤법, 언어활동 등을 포함하되 어휘의 순화를 먼저 한다”라고 제시했는데, 이는 한자어와 외래어를 고유어로 바꾸려는 정책에서 기인했다.

이후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세계화의 물결 속에 서구계 언어, 특히 영어의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국어 순화 운동은 주로 서구어에 초점을 두어 전개해 왔다.

국립국어원은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낯선 외래어와 외국어, 어려운 한자어들을 쉬운 우리말로 다듬고 있는 정책을 1977년 이래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2003년까지 2만1000여개의 순화집을 발간했고, 2004년부터 2020년 6월 현재까지 488개의 순화어(다듬은 말)를 선정 발표했다.

이 중 익숙한 사례를 유형별로 소개하면 우선 언중(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공동생활을 하는 언어 사회 안의 대중)이 순화어를 잘 사용하고 있는 경우로 '에어캡(air cap)→뽁뽁이, 언택트 서비스(untact service)→비대면 서비스'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순화어는 간결하고 좋은데 언중이 사용하지 않은 경우로 '스크린도어(screen door)→안전문, 내비게이션(navigation)→길도우미, 길안내기, 드라이브스루(drive through)→승차 구매' 등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순화어로 한 것이 길거나 어색한 경우로 '페티켓(petiquette)→반려동물 공공예절, 하이파이브(high five)→손뼉맞장구, 롤모델(role model)→본보기상, QR(큐아르)코드→정보 무늬, 소셜 미디어(social media)→누리 소통 매체, 멘토링(mentoring)→후원, 상담, 지도, 웰빙(well-being)→참살이' 등이 있다. 또한 '블루투스(blue tooth)→쌈지무선망→블루투스, 스마트폰(smart phone)→똑똑(손)전화→스마트폰' 등처럼 애써 만든 순화어를 다시 외래어로 환원시킨 경우도 적지 않다.

의사소통의 원활을 위해 '쉬운 우리말 쓰기' 차원에서 다듬어 쓰는 일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순화가 필요하다면 어떠한 순화어가 적절한지에 대한 기본적인 조사가 이뤄져야 하며, 국어 순화는 언중의 언어 사용 실태를 조사_반영해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외래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순화어 대상으로 삼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욱이 K-Pop 등 한류 열풍으로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 열풍이 불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시점에 외래어를 국어로 순화하려는 국수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 고유어를 되살려 쓰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문장과 글을 바르게 쓰는 일이며, 외래어와 외국어를 함부로 사용하는 일보다 어법에 맞지 않거나 파괴해서 쓰는 것이 훨씬 부끄러운 일이다. 21세기 언어 사회는 언어경쟁 시대에 직면하고 있어 다양한 생태학적 언어 환경에서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소멸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21세기 국어 순화 운동은 어휘에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발음이나 표기상 잘못 사용하는 말을 바르게 고쳐서 사용하는 정확한 표기도 포함시켜야 하며, 문장_담화 등에서 사용하는 비문법적인 표현도 순화 대상으로 삼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박덕유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