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남부의 116년 된 워싱턴 기념 동상, 반달리즘 피해

 

▲ 시카고 워싱턴파크 조지 워싱턴 동상 [시카고 abc방송 화면 캡처]

 

미국에서 한창 벌어지고 있는 동상 철거 논쟁이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지 워싱턴(1732~1799)에게로 불똥이 튀었다.

최근 미국에서는 흑인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시위가 확산하며 '인종차별 역사의 상징'으로 간주해온 인물들의 동상에 대한 철거 요구와 훼손 행위가 잇따르고 있다.

시카고 남부의 유서 깊은 공원 워싱턴파크에 서 있는 116년 된 워싱턴 전 대통령 기념 동상이 낙서로 훼손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고 연합뉴스가 15일 시카고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시카고 경찰은 전날 오전 7시께 신고를 받고 현장에 가보니 워싱턴 동상 위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노예 소유주'(Slave Owner), '백악관을 불태워라'(Burn Down the White House) 등의 낙서가 돼 있었다고 전했다.

또 아메리카 철자를 백인우월주의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에 빗대 '갓 블레스 아메리카'(God Bless Amerikkka)라고 쓴 문구도 적혀 있었으며, 동상 머리 부분에 KKK를 연상시키는 흰색 두건이 덮여 있었고, 인근 나무에 흰 가운이 걸려있었다고 설명했다.

1904년 세워진 이 동상은 미국 독립전쟁 당시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활약한 워싱턴의 모습을 담고 있다.

워싱턴은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미합중국을 수립했을 뿐 아니라 초대 대통령으로서 보여준 합리적이고 절제된 리더십으로 오랜 기간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대농장 지주 출신으로 노예를 소유했었으나, 연방주의자였다.

시카고 지역사회 운동가 윌리엄 캘로웨이는 동상이 공교롭게도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1929~1968) 기념 도로(MLK Drive)에 서 있다고 지적한 뒤 "낙서에 담긴 메시지는 정확하다. 워싱턴이 노예 소유주였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훼손 행위를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주민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면서 "시 당국은 시내에 설치된 노예 소유주들 동상을 모두 철거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주민 레지 오웬스는 "워싱턴은 우리 역사의 일부다. 문제 될 게 없다"며 철거에 반대했다.

시카고 스테이트대학 흑인역사학과 라이오넬 킴블 교수는 "과거의 상징들을 모두 지워버린다면 우리가 누구인지 이해할 수가 없어진다. 역사를 파괴하는 대신 워싱턴이 미국사에서 갖는 의미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 역사를 토대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시카고 경찰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가 아닌 대물범죄로 분류해 수사하고 있다면서 시 당국이 낙서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은 지난 13일에는 시카고 도심 인근 리틀이탤리 지구에 설치된 이탈리아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0~1506) 동상이 페인트 세례를 맞는 사건이 발생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와 남북전쟁 당시 남부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장군(1807~1870)은 미국 인종차별 역사의 상징으로 낙인이 찍혀 전국 곳곳에서 동상 훼손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시카고 경찰은 이번 사건도 같은 맥락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혁신 기자 mrpen@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