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았음에도 의미를 되새길 겨를이 없다. 북한이 계속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남북관계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13일 담화를 통해 “머지않아 쓸모없는 남북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다음번 대적(對敵) 행동의 행사권은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면서 대남 무력도발을 예고했다. 김여정은 또 “확실하게 남측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면서 “배신자들이 저지른 죗값을 받아내야 한다는 판단과, 그에 따라 세운 보복계획들이 확고히 굳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무색할 정도로 살벌한 광경이다. 김여정의 언급이 개인담화 형식을 갖추고 있으나, 그의 위상으로 볼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뜻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정부는 현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단은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서 비롯됐지만, 북한은 지난해부터 이상기류를 보여 왔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두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신뢰를 쌓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북한 측은 남한의 중재 역할을 의문시하는 시각을 여러 형태로 표출해 왔다. 남한이 미국에 종속돼 핵문제 타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제한적이다. 북한에 맞불을 놓을 수도 없고, 마냥 저자세를 유지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다.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제정하겠다는 등 정부가 신속한 대응에 나섰음에도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 북측의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어찌됐든 문재인정부가 애써 일궈왔던 남북 해빙무드가 일거에 사라진 느낌이다. 그럼에도 남북 평화와 공존을 향한 장도를 다시 걸어가야 한다. 현재로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거론하는 건 무의미하다. 6•15선언의 의미를 새기면서 인내심을 갖고 정도를 추구하면 길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