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란 개념은 보통 동물행동학에서 쓰인다. 동물들은 살아가면서 잠을 자고, 알과 새끼를 낳으며, 포식자나 각종 위험에서 피할 곳 등 공간적 장소를 필요로 한다. 번식기가 다가오면 알이나 새끼를 낳아 안전하게 키울 수 있는 둥지를 확보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둥지를 트는 조류 중 어떤 새들은 내부를 매우 정교하고 복잡하게 만든다. 둥지 재료와 형태도 아주 다채롭고 천차만별이다. 사람도 역시 다양한 형태로 둥지(집)를 짓고 살아간다.

최근 곳곳에서 황폐한 도심 공간을 재개발하는 사업이 활발하다. 재개발은 사무실과 상업 시설, 주거지 등을 속속 들어서게 한다. 이 과정에서 원주민은 대부분 오랫동안 지내왔던 동네를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한다. 기존 '지역 생태계'가 파괴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도시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주거시설이 새로 형성되는 변화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 부른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중하류층이 살아가는 공간에 상류층이 치고 들어와 새롭게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주·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런던 서부 첼시와 햄프스테드 등지의 하층계급 주거지역이 중산층 이상의 유입으로 인해 고급 주거지로 탈바꿈하고, 이에 따라 원주민들은 치솟는 주거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살던 곳에서 쫓겨남으로써 지역 전체 구성과 성격이 변한 현상을 설명한다.

국내에서도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하다. 대표적 사례로 서울 홍익대 인근(홍대 앞), 경리단길, 경복궁 근처 서촌, 인천 신포동 등지를 꼽을 수 있다. 임대료가 저렴한 이들 지역에 독특한 카페나 공방, 갤러리 등이 들어서면서 입소문을 타고 유동인구를 크게 늘렸다. 상권 활성화를 이루자 프랜차이즈 점포가 입점하는 등 대규모 상업지구로 바뀌게 됐다. 결국 껑충 뛰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기존 소규모 상인들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불과 몇년 전까지 전문서적에나 등장했던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는 이젠 이처럼 '보통명사'일 정도로 변모했다. 국립국어원에선 '둥지 내몰림'으로 순화했다.

인천에 영세 상인들이 밀려나는 '둥지 내몰림'을 방지하려고 법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소식이다. 인천시는 얼마 전 '지역상권 상생협력 촉진 및 지원 조례'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임대차 계약에서 상생협약을 권장하고, 입점 상인들을 보호하는 '상생협력상가'를 지정하는 게 뼈대다. 조례안엔 상권이 활성화하는 지역의 임대차 실태를 시에서 조사하고, 임대료 인상을 일정 범위 내로 유도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렇듯 조례까지 만들어 젠트리피케이션을 막으려는 시도가 씁쓰레하기만 하다. 그래도 이를 통해 원주민들이 내쫓기지 않고 지역상권을 보호할 수 있으면 한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