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곡에서 근남으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
거기 폐정된 우물 하나 있다
서두르면 냉수도 체하니, 버드나무 한 그루
늙도록 잎사귀 흔드는 걸 몰랐었다
꽃가루 눈발처럼 흩날릴 때
앓아온 눈병 일생을 두고
더 낫지 말아라
누가 불행하다고
가고 있는 봄 한 철에 기대랴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 투성이니 많이 잃고도
하나도 잃지 않은 저기 폐정된 우물
들여다보면 어둑한 물 위로 낙화
물풀처럼 떠돈다
가버리면 봄이었다는 생각이
갈 길 새삼 낯설게 한다
폐정된 우물에 띄워진 꽃잎들, 그것은 봄이다. 아니 가는 봄이다. 우리는 우물을 잊고 살았어도 우물은 우리를 잊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물 위에 꽃잎을 띄워놓고. 그 우물 위로 또 몇 번의 봄이 지나갔을까. '가버리면 봄이었다는 생각이' 한 갑자가 지날 즈음 들었으니, 참 한세상 허무히 지나갔다. 그때 만났던 너가, 지나고 보니 나의 봄이었네 …
사는 것이 모두 그렇다. 곁에 있을 땐 소중한 줄도 모르고 무심하게 산다. 그러다 가 버리고 나면, 아 그때가 봄이었구나, 그것이 사랑이었구나, 탄식한다. 눈을 질끈 감기도 하고 가슴을 탕탕 치기도 하며.
그런 봄이 수십 번 지나가고 내년 봄도 또 지나간다. 나는 그때도 여전히 무엇이 지나가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나에게 죽음이 다가와도 나는 모를 것이다. 죽음 그 너머에 가서 아, 그것이 죽음이었구나,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비포장도로 그곳에도 폐정된 우물 하나 있어, 물 위에 꽃잎도 떠 있어, 내 생에도 봄날이 스쳐갔구나 느낄 것이다.
지금 꽃이 진다, 계절이 진다, 아 좀 전 그때가 나의 봄이었구나!
/권영준 시인·인천삼산고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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