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 영국의 도상학자(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했다. 미술을 이해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이 말은 도시에 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도시도 아는 만큼 보인다. 인간사회와 도시의 속살을 한 번 들여다보자. 사람 사는 세상에서 겉보기에는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부부들이 실상은 죽지 못해 사는 쇼-윈도 부부들이 얼마나 많은가. 즉, 우리가 겉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겉보기에는 멋지고 아름답게 보이지만 실제로 살기에는 불편한 도시가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허름하고 퇴색된 모습을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강렬한 역동성을 보이는 도시도 있다. 전자의 사례로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을 들 수 있으며, 후자의 사례로 인천 배다리 지역을 들 수 있다.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을 가보자. 겉보기에는 멋지다. 중앙에 센트럴파크가 조성되어 있고 주변에는 고층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며 도로는 직선으로 쫙 뻗어 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다. 몇몇 중심지를 벗어나면 걷는 사람이 없다. 보행자가 없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에 비해 녹지가 많이 조성되었고 도심에 센트럴파크가 있는데, 이곳을 벗어나면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도시가 자동차 중심으로 조성되어 보행자가 다니기에는 볼 것도 없고, 쉴 곳도 없으며, 먹을 곳도 마땅찮고, 재미도 없다. 왜 이렇게 되었나. 그 원인 가운데 하나는 아파트단지들이 단지 내에 상업시설을 조성해 주변 지역과 연계 활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지에 들어가면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고, 밖으로 나올 때는 걷는 것이 아니라 자동차를 이용하기 때문에 보행자를 찾을 수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는 녹지가 형성되어 멀리서 보기에는 쾌적하다. 그런데 실제 생활하는 사람들은 동선이 길어지고, 건물이 단절돼 상점들이 들어서기 부적합하며, 건물 사이로 비바람이 몰아쳐 방풍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을 겨울이면 `송베리아 (송도 + 시베리아)'라고 부른다. 세 번째로 흩어진 도시활동을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소통과 만남의 공간이 없다. 서울에는 광화문 앞 광장, 시청 앞 광장 등이 있어 시민들이 모이고 소통하며 도심의 중심지를 형성한다.

그런데 경제자유구역에는 이런 공간이 없어 시민들이 모이고 소통하기 위한 만남의 공간, 소통의 공간, 공공의 공간이 없다. 다음으로 송도 경제자유구역에는 동맥과 정맥은 있지만 실핏줄이 없다. 즉, 공동체를 연결하는 골목길이 없다는 것이다. 이게 한국의 선도도시로 내세우고 있는 인천 송도 경제자유구역의 속살이다.

다음으로 인천 배다리 지역을 들여다보자. 인천 금창동과 송현동 일대를 일컫는 배다리마을은 겉보기에는 허름하고 누추한 동네 모습을 보인다.

첫째, 배다리에서는 보행자들이 눈에 띈다. 거리에 헌책방도 있고, 이발소도 있으며, 사진관도 있고, 음식점도 있으며, 구멍가게도 있다. 둘째, 배다리는 상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동선을 줄이며 거리 활동의 연속성을 보인다. 식사를 위해 인근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필요한 물건들을 인근 구멍가게에서 구입하며, 때가 되면 이발소에서 이발을 하고, 저녁에는 인근 주막에서 술 한잔 기울이며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음으로 배다리에는 골목길이 있어 주민들이 작은 이야기를 만들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골목길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 접촉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공동 관심사와 정보를 공유하며,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를 계승해 만들어가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긍심, 소속감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위 두 곳을 비교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송도는 겉보기에는 멋지고, 현대도시의 모습을 보이며, 살기에 편리한 도시로 인식될 수 있다. 그런데 실상은 살기에 불편하며, 자동차가 있어야 하고, 걷기에 황량하고 불편한 도시를 연출한다. 반면에 배다리는 겉보기에는 허름하고 누추해 보이지만 거리가 살아 있고, 골목길이 있어 이웃 간에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고, 공동체의 정체성과 소속감이 형성된 정감 있는 도시를 느낄 수 있다. 도시 화장이나 성형을 통해 거리 모습과 풍광은 나아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시민들의 삶의 질과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도시는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며, 아는 만큼 도시는 보인다.

 

/김천권 인하대 명예교수·인천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