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순

내 걸어온 생의 발자국들
하나의 선으로 그어본다

남도 끝자락 고흥 바닷가
태풍 자주 휘몰아치던 골목길 떠나
이곳 청계산 자락에 둥지 틀 때까지
삐뚤삐뚤 끌고 온 멀고 긴
시간의 곡선

오른쪽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기울고
이럴까 저럴까 망설이던 순간들엔
백척간두에 선 듯 온몸이
흔들거리며 한참을 떨고 있다

뚜벅뚜벅 직선으로 걸어가는 사람들
번뜻번뜻 눈망울 굴리며 질주하는 사람들
부러움으로 한참을 바라보기도 했지만
직선이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 곡선이 아닌 게 삶의 길

구불텅 구불텅 출렁이며
주름진 시간의 삭은 뼈들이
삐걱삐걱 관절을 부딪히며
이 하루
또 나를 끌고 간다

우리의 삶, 그러니까 “내 걸어온 생의 발자국”은 직선인가 곡선인가. `생의 발자국'이 곡선이어도 순간순간의 시간은 직선일 수 있고, `생의 발자국'이 직선이어도 그 관계는 곡선일 수 있다. 그것을 신진순 시인은 자신의 삶에 드러나는 시간의 낙차를 시적으로 도약시키고 있다. “직선이 직선이 아니고”와 “곡선이 곡선이 아닌 게 삶의 길”이라는 언술 사이로, 세상과 부딪치는 관계의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그러나 저 언술들은 이렇게 뜻을 새기기 전에 이미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그 언술에는 “주름진 시간의 삭은 뼈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자의 도덕경에 `곡즉전, 왕즉직(曲卽全, 枉卽直)'이라는 말이 있다. 굽은 것이 곧 완전한 것이고, 휘어질 수 있으면 바로 설 수 있다는 뜻이다. 구부러진 나무가 수령(樹齡)을 다(全)하는 것과 같이 사람도 굴곡의 묘미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완전, 완벽함을 지향한다.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불완전(曲)하다는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 완전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곡선(曲)'은 단지 삐뚤어지고 굽어있다는 뜻이 아니라 상징적으로 낡은 것, 보잘 것 없는 것, 어두운 것, 쓸모없는 것 등의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사물과 대상에 대한 가치이다. 그러니까 `곡선'에 대한 명상은, `밑바닥'에서 피어올린 어두운 것들,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대한 애정과 성찰이다. 여러분은 어떤 삶의 길을 걷고 있는가?

/강동우 문학평론가·가톨릭관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