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이 열린들 아이들이 품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난 문은 열리지 않는다. 각자 책상 앞에서 자기 공부로 직진하던 학습이 책상을 마주하고 배움을 나누는 교실이 된다면 아이들도 '학습하는 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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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가 미칠 때쯤 방학이 오고 학부모가 미칠 때쯤 개학이 오는' 주기가 무너졌다. 이것은 방학인가, 아닌가. 바이러스는 숨어서 기승을 부리지만 아이들은 눈앞에서 몸부림 중이다. 컴퓨터 게임이 미래를 보장해 주지 않는 한 '노는 꼴을 못 보는' 어른들의 공부 타령이 수시로 출몰한다. 공포는 가끔 잊히기도 하는데 짜증은 집안에서 퍼져 나가는 현존이다. 학습을 제공할 공공기관들은 죄다 '셧다운' 상황, 오로지 가정의 힘만으로 공부를 챙기려니 역부족이다. 이나마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가정 얘기다. 방학 아닌 방학을 혼자 겪는 아이에게 고통은 바이러스만이 아니라 갇혀 지내는 일상 자체다.

재택근무에 들어간 학교도 엎치락뒤치락 일이 엉킨다. 시교육청에서 학습 결손을 보충하자고 원격 수업을 안내했다. 말미에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문구를 넣는 바람에 '학교를 상대로 숙제 검사하겠다는 거냐' 풍파가 일었다. 입시 압박에 몰리는 고등학교에서는 사이버 수행 평가까지 언급해 보지만 예민한 사안이라 쉽지 않다. 교육부는 여름·겨울 방학을 줄여 법정 수업 일수 190일에 맞추겠다는 계획이다. 시작이 늦을 뿐 23일에 개학하면 수업 결손은 없다. 학원이 집단감염원이 될까 전전긍긍하면서도 문을 못 닫는 데서 보듯 우리는 더 센 '집단공부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

어른들이 보기에 텅 빈 시간이겠지만 아이들이 불안과 강박만으로 채울 리 없다. '영통'(영상통화)과 '페탐'(페이스 타임)이 학교와 학습을 벗어나 서로를 엮는다. 관계가 어떤 배움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학교가 열리기만 기다린다. SNS가 '자가격리'를 돕는 친구가 되면서 스마트폰이 공부의 방해꾼이라는 눈총에서 벗어나는 중이다. 대학은 일찌감치 '싸강'(사이버 강의) 준비에 착수했고 4월 초까지 운영하려는 곳도 있다. 초중등학교에서 원격 비대면수업이 효과를 거두려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놀잇감을 넘어 세상과 이어지는 통로가 돼야 한다.

학생은 학습하는 인간이기 이전에 삶을 사는 존재다. 삶이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는데 학습의 위기부터 강조한들 선뜻 받아들일 리 없다. 모두가 그렇듯 위기를 견디는 생존력이 중요할 때엔 아이들도 그렇다. 스마트폰을 쥔 손보다 아이들이 견뎌 낸 시간의 무게에 시선을 돌려야 한다. 적의를 부추기던 선동을 누르고 선의를 나누며 다진 연대감이 코로나19를 이길 것이다. 그 속에 아이들이 함께 해 온 몫이 있다. '포노사피엔스'로 살아 온 아이들이 '호모쿵푸스'로 자동 치환하길 바랄 순 없어도 쌓인 내공을 찾도록 돕는 게 공부의 시작이겠다.

닫힌 교문이 열리면 학교를 향해 '향후대책'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가짜뉴스는 '미디어리터러시 교육'으로, 혐오가 베어 낸 상처는 '인권교육'으로, 신천지를 바로 알려면 '종교교육'이, 기존의 '안전교육'에다가 미증유 사태가 보강된 최신판 안전교육매뉴얼을 추가하고 마스크 사재기에 휘둘리지 않는 성숙한 '민주시민교육'도 강화하자 할 것이다.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니 '선거 계기 교육'도 급하고 무엇보다 근본에 다가가려면 '생태환경교육'부터 …. 이전과 다르지 않은 분절적인 내용과 내리먹임 방식으로는 학습 의욕을 자극할 수 없다.

위기를 겪은 후 고통에 혼이 패인 사회가 아이들 몸에 새겨 줄 교육은 졸가리부터 달라야 한다. 김상봉은 '호모에티쿠스'에서 고통의 기억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겪은 고통은 '인간을 깊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메마르고 이기적이 되게 하는데 그건 결국 우리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아이들이 지켜본 우리 사회는 이기적이기도 했지만 인상 깊은 연대감을 남겼다. 위기를 겪은 학교가 고통 이후 달라진 게 없다면, 교문이 열린들 아이들이 품은 더 나은 세상으로 난 문은 열리지 않는다. 각자 책상 앞에서 자기 공부로 직진하던 학습이 책상을 마주하고 배움을 나누는 교실이 된다면 아이들도 '학습하는 인간'으로 진화할 것이다.

임병구 인천석남중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