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무죄, 무전유죄.' 1988년 교도소 탈주범 지강헌이 서울 북가좌동에서 인질극을 벌이던 중 기자들에게 외쳐 유명해진 말이다. 허나 한번쯤이라도 송사 때문에 허리가 휘는 일을 겪은 사람이라면 한낱 범죄자의 궤변이라고 치부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민망한 얘기지만 한때 '변호사는 허가 받은 도둑'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법 운용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느낄 수 있다.

사회가 진화하고 사법시스템이 보완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모순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더니, 대형 로펌의 등장으로 다시 이 말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소송이 발생했을 때 대형 로펌을 선임한 대기업이나 거대 세력을 이기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는 것은 법조계의 상식이다. 그만큼 로펌은 상대에게 두려운 존재다.

대형 로펌은 법조계의 '미다스의 손'(손대는 일마다 큰 성공을 거두는 능력자)으로 불리며, 사회적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말까지 나온다. 로펌은 거물급 검사·판사 출신을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법복을 벗은지 얼마 되지 않은, 흔히 말하는 '따끈따끈한' 변호사다. 이들을 통해 자연스레 현직 법조인과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전관예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같이 근무함으로써 형성된 인맥, 학맥 등은 무시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로펌의 힘은 여기서 나온다. 로펌에서 1~2년만 일해도 수억원이 보장되니 한때 기개 있던 판검사도 로펌의 손짓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는 성적이 좋은 사법연수원생을 입도선매하기도 한다.
그런 로펌이 코로나19 대량감염 사태를 일으킨 신천지교회 논란에 등장해 눈길을 끈다. 한때 신천지의 2인자였던 김남희(여)씨는 방송에서 신천지와 소송 중이라고 밝힌 뒤 "신천지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로펌 1, 2위 다 사서 저 한사람 상대하고 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제가 그 큰 로펌을 어떻게 상대하나. 100%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로펌의 위상과 파워에 대한 인식, 그로 인한 위축이 묻어나온다.
김씨는 신천지 교주 이만희에게 속아 사기결혼을 당하고 재산을 탕진했다며, 관련된 이만희의 육성녹음과 친필을 언론에 공개한 사람이다. 그는 "그 어마어마한 돈(소송비용)이 어디서 나오나. 신도들의 돈이다. 입지 않고 먹지 않고 김밥 한줄 사서 전도 다니고 하는 사람들, 밖에 나가고 일하는 사람들이 헌금한 돈을 갖고 (소송을 하는 거다)"라고 덧붙였다.

로펌 때문에 구설수에 오른 사람들도 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는 대형 로펌에서 7개월간 7억원을 받은 것으로 곤욕을 치르다 낙마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고검장 퇴임 후 로펌에서 17개월간 일하며 자문료·수임료 명목으로 16억원을 받은 것 때문에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청문회,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대표 경선에서 잇따라 논란이 됐지만 치명타는 입지 않았다.

로펌이 인수합병·지식재산권·국제중재 등 미개척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인정하지만,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법과 정의의 가치보다는 고객에게 유리한 환경과 논리를 만들어 내는데 집중한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그것이 변호사의 의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고 법체계가 왜곡될 수 있다. 로펌을 선임한 기업의 수백억대 횡령·사기·탈세가 잡범만도 못한 처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의뢰인의 범죄와 거짓말을 알면서도 '법 기술'을 통해 소송에서 이기는 행위는 모순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대형 로펌은 변호사업계의 균형도 무너뜨리고 있다. 사무실 임대료조차 내지 못하는 변호사들이 있는 반면, 로펌은 전국적으로 대형 사건 상당수를 수임하고 있다. 로펌이 돈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고 반대의 계층은 결과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으로 작용한다면 법 정의는 멀어지고 사법체계 근간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만인에게 공평해야 할 법마저 저급한 자본주의 논리에 휘둘려서야 되겠는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