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불안한 때가 있었는가. 물론 많았다. 많은 불안한 시절이 과거가 되었기 때문에 지금의 불안에 비하면 과거의 기억은 희미해진다. 그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지금이 가장 불안하다고 난리다. 사실 사스 때도 불안했지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때는 자동차로 주로 이동하다보니 모르는 사람들과 접촉할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은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다보니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일이 많아졌다. 나름 불안해질 이유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불안과 긴장 때문에 상담실에 온다. 그 불안이 자신의 생활과 일에 영향을 많이 줄 때 온다. 그리고 가능하면 빨리 불안과 긴장을 없애주기를 원한다. 그런데 왜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를 자꾸 해야 하는지 짜증을 낸다. 표면적으로 불안 증상은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발생 원인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불안이라는 증상을 잠시 없앨 수는 있다.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자신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각종 방법을 사용한다. 다른 일에 몰두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시끄러운 사람들 속에 있거나 혹은 약물로 불안을 감소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방법들은 일시적인 효과를 가질 뿐이고 결국 불안은 다시 돌아온다.

지금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보이지 않는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다.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적이 가장 두려운 거 아닌가. 1차 세계대전 때가 그러했다. 이때부터 전쟁 양상이 바뀌어 군인들이 전선을 따라 참호를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적과 대치했다. 그 전에 전쟁이란 적과 마주하고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아주 정직한 전투 형태였다. 그런데 이제 적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참호로 대규모 공습이 불시에 일어났다. 군인들은 언제 포격을 받을지 모르는 불안감과 두려움 속에서 몇 달이고 참호에 갇혀 있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군인들은 각종 신체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이런 이상 현상을 전쟁신경증이라고 했다.

놀라운 사람은 자신이 확진자임을 알고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경우다. 이 사람의 심리는 뭘까. 혼자 죽는 것이 불안하고 억울한 것인가.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서 감염된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복수하는 것인가. 이것은 자신의 분노와 증오를 다른 사람들에게 퍼붓는 일종의 폭력적인 행위로, 자신의 불안이나 감정 혹은 생각을 밖으로 행동화해 버리는 것이다. 좋은 의미의 행동화도 있지만 우리의 시선을 끄는 것은 이런 부정적 행동화다.

어떤 사람은 금방 죽을 일이 일어날 듯 공포에 사로잡혀 우왕좌왕한다. 애초에 불안이 높은 사람은 외적인 바이러스 사건으로 불안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면서 패닉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패닉 상태에 빠지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 힘들다. 중요한 점은 불안은 무조건 나쁜 것도 아니고 재빨리 제거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불안에 마비되거나 혹은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대신 당신의 불안이 주는 메시지를 먼저 파악하라. 어쩌면 당신의 목숨을 구할지도 모른다.

양혜영 정신분석상담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