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오파트라로, 이몽룡으로...인천 연극 꽃 피웠다

수봉문화회관서 전국 첫 공립극단 탄생
우여곡절 겪으며 '성쇠'…다시 '비상' 꿈
 

1990년7월1일, 전국 최초의 공립극단이 인천에서 탄생했다. 분칠과 진한 화장을 한 채 때로는 클레오파트라로 때로는 이몽룡으로 때로는 거리의 집시가 되던 인천의 연극인들에게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처음 미추홀구 수봉문화회관에서 시작한 인천시립극단은 수없이 많은 변화와 곡절을 겪으며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예술감독이 일곱 차례 바뀌며 극단을 이끌었고 장소도 지금의 구월동 인천문화예술회관으로 옮겨왔다. 예술의 공공성을 목표로 30년간 달려온 인천시립극단은 연극 장르의 지역문화 발전에 꽃을 피웠다.


시립극단 단원으로 활동하다 2011년 정년퇴임한 김용란씨가 쓴 <배우 김용란의 인천연극 이야기>를 통해 인천시립극단 30년을 되돌아본다.
 

#가난했지만 연극정신이 빛나던 초창기(1990~1993)
지역 예술인들의 강력한 뜻과 예술혼으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공립극단이 태동하긴 했으나 현실은 열악했다. 행정기관에서 연극 제작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지난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약 30명의 극단 단원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서서히 체계가 잡혔으며 극단 정착과 대중화를 꿈꿀 수 있게 됐다.
인천시립극단의 초대 단장은 윤조병 예술감독이었다. 첫 작품인 춘향전을 시작으로 만선, 열개의 인디언 인형, 우리집 식구는 아무도 못말려, 출세 대작전, 세일즈맨의 죽음, 시간의 침묵, 영혼의 노래, 정의의 사람들, 말괄량이 길들이기, 수전노 등의 걸출한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시립극단의 르네상스(1994~1999)
2대 예술감독으로 이승규 단장이 선임되고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으로 들어오며 인천시립극단은 화려하게 도약했다. 실험적이면서 완성도 높은 작품과 단원들의 하모니가 관객들의 교감을 이끌어내 연극계 안팎의 찬사가 쏟아졌다. 서울에서 장기공연과 미국 등 해외공연도 잇따르던 시기다.
특히 작은 교회를 비롯해 구치소 등 소외지역과 소외 이웃에게 찾아가는 공연을 처음 시도하며 공립극단으로서의 공적 역할에도 충실했다.



#침체기(2000~2005)
창단 10년째 접어들던 인천시립극단은 빛나던 황금시대를 더 확장하지 못하고 극단 대내외 적으로 발생한 갈등에 시름했다.
이 시기 공연한 작품의 수는 많았으나 수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으며 단원들 사이에 파벌이 생겨나는 등 상처가 깊었다. 지역 연극계와 시립극단 사이 파열음도 적지 않아 많은 단원들이 극단을 떠나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1년에는 인천시립극단 노동조합이 탄생하기도 했다.



#다시 일어서는 부흥기(2006~현재)
이종훈 5대 예술감독을 비롯해 6대 주요철 감독을 거치며 인천시립극단의 정상화를 꾀했다.
시련과 김장하는 날, 봄날, 한여름밤의 꿈, 크리스마스와 스크루지, 불멸의 처, 소금장수, 맥베스, 닭집에 갔었다, 사랑과 광증, 사랑과 죽음의 유희, 헨젤과 그레텔, 아씨, 어린왕자, 아빠의 청춘, 햄릿과 같은 작품이 관객들을 만났다.
2016년 강량원 감독이 7대 단장으로 선출되며 인천시립극단의 새로운 비상을 그리고 있다.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과오 인정하고 번창 되새겨야"

 

▲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 강량원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예술이 특정한 누구의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향유하는 권리라는 생각을 30년전에 이미 했고, 30년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사실. 놀랍지 않나요?"


2016년 부임 이후 4년째 된 강량원(사진)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은 극단이 걸어온 세월을 이렇게 축약했다.


하나의 도시에서 온전하게 시립으로 운영하는 극단은 그 존재만으로도 예술의 공공성을 상징한다.


"지금까지의 시간을 되짚어 보고 30년 이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지 명확하게 성찰하는 기회로 삼고자 해요. 역사의 과오를 인정하고 번창했던 옛날을 되새기면 제대로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천시립극단은 공립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익이나 수익보다는 시민의 이익과 권리를 앞서 고려해야 한다는게 그의 생각이다. 민간이 기획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들고 소개하는 과정에 사명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연극무대로의 인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돌체 소극장 등의 활약은 한국의 연극사에서도 선도적이며 마임도 인천에서 출발했다.


"인천은 대한민국에서 노동이 가장 부각되는 도시고 근대사를 훑어볼 때 가장 역동적인 곳이죠. 인천을 기반으로 한 창작극과 국제도시와 다문화 같은 인천의 특수성을 잘 살린 작업이 필요합니다. 서울 등 타 지역의 좋은 활동가들과 인천이 결합해 시너지를 내는 것도 인천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우리의 역할이죠."


그에게서 인천에서 연극예술을 한다는 것이 결코 편한 일은 아니다. 서울의 근교라는 꼬리표가 부정적으로 반영될 때가 적지 않다.


"인천시민들이 연극을 좋아합니다. 다만 서울이 바로 코 앞이니 유출이 쉽죠. 오히려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지역 내 연극 소비가 원활한 상황이니까요. 마치 서울과 대결해야 하는 실정을 극복하는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강량원 감독은 앞으로 현대를 직시한 작품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난민과 정체성, 노동, 재난, 환경 등 지금 우리가 처한 시대적 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연출과 기획을 할 때 관객들과 시민들의 소감과 의견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됩니다. 더 많이 소통하길 원합니다."
 



2020년 인천시립극단 공연



#무의도 기행
인천시립극단은 30주년을 기념하며 함세덕의 '무의도기행'을 음악 낭독극으로 무대에 올린다. 일제강점기 최고의 사실주의 희곡으로 수난 받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고난을 그려낸다. 한 겨울 매서운 추위와 살을 에는 바람, 무엇보다 삼킬 듯이 달려드는 거대한 바다는 소년이 맞서 싸워야하는 세계를 그리고 있다.

#십이야
세익스피어의 '십이야'를 임도완 연출과 함께 한다. '십이야'는 세익스피어 작품 중에서 가장 우아하고 로맨틱한 코미디라고 정평이 나있다.

#아내의 레시피
'아내의 레시피'는 2019년 4월 도쿄의 한 극장에서 공연돼 호평을 받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정년퇴직하고 아내를 병으로 잃은 뒤 자포자기한 중년남자가 아내가 남긴 한 장의 빵 요리법을 발견하고 그 빵을 굽기로 한다. 뒤늦게 아내가 노숙자들에게 빵을 지원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한 때 노숙자였던 사람들과 함께 빵집을 연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