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국회의원들이 2월11일 '국회국민발안개헌추진위원회'를 결성해 국민발안권 도입을 위한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4월15일 총선과 동시에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목표로 한다. 26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 국민발안개헌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을 주장하면서 정치권이 호응을 한 것이다. 2월 23일 현재 131명의 국회의원이 동의하고 개헌지지의사를 밝힘으로써 국회발의 정족수인 재적과반수(148명)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보이는 협치의 모습이다.

그동안 승자독식의 대통령제하에서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어 여당과 야당은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빚어왔다. 여당은 야당을 적대시하여 청산의 대상으로 보고, 야당은 여당이 국정을 수행할 수 없도록 발목을 잡는 정치를 수십년간 반복하고 있다. 이에 헌법을 개정해 권력을 분산시키려는 시도가 1990년대부터 있어 왔지만 모두 실패했다. 정치권이 국가의 장래가 달린 헌법개정문제를 당리당략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20대 국회에서 헌법개정을 약속했고, 지난 대선과정에서 모든 후보자들이 헌법개정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국회에 개헌특위를 구성하고도 개헌에 성공하지 못했다. 당리당략에 빠져 개헌공약은 헌신짝이 되어 버렸다.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기도 했지만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진정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대다수는 헌법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월15일 총선을 통해서 21대 국회가 새로 구성되어도 여전히 개헌의 전망은 불투명하다.

국민들은 헌법개정을 정치권에만 맡겨놓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경험했다.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빠져 헌법을 개정할 수 없거나 개정하지 않는 경우에는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나서서 헌법을 개정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직접 개헌발안권을 가지게 되면 개헌의 물꼬가 열리게 되고 정치권에서도 헌법개정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스위스에서는 국민발안을 통해 국민이 직접 헌법개정을 발안해서 국민전체가 표결을 통해서 헌법을 개정할 수 있다. 이에 정치권은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국민이 요구하는 헌법개정을 해야 할 압력을 받게 된다.

헌법개정국민발안권은 어느 정파에게 특별히 유리한 것이 아니다. 국회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는 소수자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민노총이나 전교조 등 좌파 대규모 조직에 의해 악용될 수지가 있어서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무런 근거가 없다. 설사 대규모 조직에서 특수이익을 대변하는 개헌을 발안한다고 하더라도 결정은 전체국민이 하기 때문에 편향된 헌법개정은 성공할 수 없다. 혹시 국민발안 반대가 국민을 믿지 못하는데서 나왔다면 주권자를 불신하는 반주권적인 발상이 된다.

스위스에서는 1893년에서 2015년 사이에 200건의 국민발안이 제기되어 국민표결에 붙여졌는데 그중에서 22건만 통과되어 헌법개정이 확정되었다. 약 90%의 국민발안은 국민투표에 의하여 부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특정집단이나 정파에 치우친 헌법개정안은 국민에 의해서 발안이 되더라도 성공하기 어렵다.

국민발안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일부국민의 주장을 국민전체의 표결에 맡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불만과 분노를 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압력솥의 김을 빼는 배출장치와 같은 기능을 한다. 우리의 경우 이러한 장치가 없기 때문에 분노와 절망에 찬 국민들이 광장에 모여 고함을 지르지만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은 없다. 만약 국민발안제가 도입되면 이러한 대규모 광장집회내지 광장정치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다. 광장에 모이는 대신 서명을 받아 헌법개정을 발안하려고 할 것이다. 국민발안은 비록 성공하는 비율은 낮다고 하더라도 소수자의 요구를 국가적인 어젠다로 부각시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민토론을 유발한다는 점에서 정치교육적인 의미도 크다.

여야가 정파를 초월하여 협치로 추진하는 국민발안 개헌노력이 당리당락에 매몰되지 않고 성사되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헌법개정의 디딤돌이 되어 줄 것을 기대한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