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때 이른 봄을 만났다. 겨우내 앙상한 가지로 떨고 있던 산수유 나목에 봄소식이 와 있다. 송글송글 가지마다 맺힌 꽃망울이 어느새 작은 틈새로 노란빛을 밀어낸다. 따사로운 햇살 한 줌, 차가운 바람 한 줌이 꽃망울을 흔든다. 양지바른 공원을 산책하면서 가지 끝으로 불러내는 노란 봄을 본 것이다.

어느새 지루한 겨울이 지났나 보다.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었다. 삭풍에 윙윙대던 가지마다 하얀 눈꽃이 피고 들판에 소복히 쌓인 흰 눈을 지난 겨울엔 거의 볼 수 없었다. 눈이 별로 내리지 않았던 겨울이 떠나고 있다. 삼한사온의 기후도 별로 느낄 수 없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몇 번 불었을 뿐 겨울은 비교적 온화했다. 겨울 채비를 단단히 했던 지난 입동철이 무색하다.

그런 가운데 맞이한 노란 산수유 꽃은 뜻밖이었다. 벌써 봄인가 싶었다. 한편 반갑기도 했다. 단단히 여민 꽃받침 껍질이 살짝 터지며 샛노란 봄을 뿜어내려 한다. 생명의 환희로움이다.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나무 중 하나다. 더러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떨구어내지 않은 채 노란 꽃이 그대로 피어나기도 한다. 봄의 전령답게 매서운 한기에도 힘을 발하며 봄을 외친다. 어김없이 진행되는 자연의 순리다.

그러나 질서 가운데 생태의 변이가 감지되는 곳도 있다. 지역마다 나무의 생태가 변해가고 있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서는 열대식물이나 열대과일이 재배된다. 확연히 느껴지는 이상기온이다. 어쩌면 아열대 기후로 이미 변해 있는지도 모른다. 식물들의 북방한계선도 이동하고 있다. 늘 푸르던 소나무 잎이 변색 된 곳도 있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기후에 적합하지 않은 나무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사계절이 뚜렷하던 우리나라도 이젠 그 변화를 점점 못 느끼게 되지 않을까.

이러한 변화는 비단 우리나라 뿐 아니라 지구촌 구석구석 일어나고 있다. 얼마전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기후 변화로 인해 바오밥나무가 쓰러졌다는 이야기를 접한 적 있다. 바오밥나무는 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 등장한 나무로도 잘 알려져 있다. 주로 기온이 높은 아프리카지역 일대에 서식하고 있다. 바오밥나무는 키가 25미터까지 자라고 나무 둘레가 40미터를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수명 또한 엄청 길다. 장수하는 바오밥나무는 5000년 내지 6000년까지도 산다고 한다. 그런 관계로 아프리카지역에서는 바오밥나무를 신성시한다. 그런 바오밥나무가 쓰러지면서 기후 변화로 인한 재앙을 염려한다는 내용이 전해졌다.

그러한 그네들의 염려는 토속 신앙적 안타까움만은 아닐 것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나무의 생태가 몸살을 앓게 되면 기후 변화는 가속화 될 것이다. 지구의 역사를 보면 늘 아름다운 푸른 별만은 아니었다. 생태가 정지된 빙하기도 있었다. 돌고 도는 순환의 이치 속에 우리는 아직 아름다운 지구별에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삭막하고 지루한 겨울 끝자락에 어김없이 피어나는 봄꽃들이 아직은 희망이다. 봄을 맞이하는 마음이 새로워진다. 미래의 어느 날에 침묵의 봄이 온다면 얼마나 끔찍할까. 봄꽃을 발견하고는 '봄이다!' 하고 탄성을 지르는 우리들의 봄날이 더욱 소중한 까닭이다.

 

최영희 시인·송도소식지 주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