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로서 굉장히 죄송하다."
 
'진범 논란'을 빚은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 재심 공판 준비기일이 열린 6일 담당 재판부가 재심 청구인인 윤모(53) 씨에게 사과했다.
 
수원지법 형사12부(김병찬 부장판사)는 6일 열린 이 사건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윤씨는 억울하게 잘못된 재판을 받아 장기간 구금됐다"며 "검찰도 무죄라는 기록을 제출했고, 변호인단도 동의한다면 무죄 선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 재판부는 윤씨 자백과 국과수 감정 등을 종합해 유죄 판결했다"면서 "현재 증거와 (국과수 감정기록, 윤씨 자백)과거 윤씨를 유죄로 본 증거가 배척돼 진범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히 인정될 수 있다"고 했다.
 
재판부는 "다만 윤씨 유·무죄를 정하는 범위를 넘어 과거 수사기관 잘못 등 다른 진실을 이 재판에서 함께 밝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준영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8차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이 무죄 선고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변호인단은 "무죄를 입증할 증거가 차고 넘친다고 해도 재판을 통해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며 "과거 윤씨도 제대로 된 재판을 받지 못했다. 수사 관계자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의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의 반론권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이날 송치한 8차 사건 자료와 과거 수사기록을 증거로 제출해 달라고 검찰 측에 요청했다. 사건을 자백한 이춘재(57)를 비롯해 당시 수사 관계자와 국과수 감정인을 증인으로 요청하고, 국가기록원이 보관 중인 범인의 음모 2점에 대한 감정도 신청했다.
 
변호인 측은 "과거 수사기관 잘못 등 총체적 진실은 법정에서 밝힐 수밖에 없다"며 "과도하다 할 정도로 증거조사를 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다한 끝에 결론을 내야 한다. 그래야 윤씨, 사건 희생자, 범인으로 몰린 수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시발점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윤씨 권리 구제를 위해서 변호인 측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윤씨는 공판준비기일이 끝난 후 수원지법 앞에서 취재진에게 "당시 판사들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그들의 사과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2차 공판 준비기일은 내달 19일 열릴 예정이다.
 
이춘재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모씨 집에서 13세 딸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을 지칭한다. 이듬해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해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은 모두 이를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 씨는 이춘재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달 14일 "이춘재가 사건의 진범이라는 자백을 했고, 여러 증거로 볼 때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된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이날 재심이 진행 중인 8차 사건과 관련해 이춘재를 살인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