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5일, 인천고 학생 519명은 미쓰비시줄사택을 보존해 달라는 탄원서를 부평구청장에게 전달했다. 부평구의 반응은 '문화유산으로 재조명'하겠다는 것이었지만, 사실상 이전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주차장 부지를 위해 4개동을 철거해 기록화사업을 진행한 후, 해체과정에서 나온 부재를 보존처리한 뒤 향후 다른 곳에 복원할 계획으로 남은 2개동의 활용방안도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내용 어디에도 구체적인 복원, 활용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임기응변으로 철거를 반복해 나가는 부평구청의 근시안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미쓰비시사택지는 1939년 일본 광산기계 제작회사인 히로나카(弘中)상공이 부평에 제2공장을 설립함에 따라 공장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업주택단지이다. 그 중 줄사택은 조선인이 대부분이었던 공원(工員) 거주용 연립사택이다. 일본 탄광노무자주택과 유사한 나가야(長屋) 형태로서 온돌을 설치했다는 점에서 식민지 조선의 노무자주택으로서의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미쓰비시사택은 군수기업인 미쓰비시제강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국 유일의 장소이다. 농업을 주를 이뤘던 부평에서 군수공업도시화가 시작됐고, 병참기지화에 따라 대량 건설된 노무자주택으로서의 도시사적, 건축사적 의미가 크다.

현재 남아 있는 미쓰비시줄사택은 6개동이다. 보존과 철거를 놓고 갈등하는 사이 주민들은 떠났고 주거환경은 쇠락해져 갔다. 이에 따라 생활환경 개선 역시 시급한 상황이긴 하지만 미쓰비시줄사택의 역사, 건축, 장소 가치를 생각하면 전면 철거는 여전히 아쉽다. 부평구청은 철거에 대한 대안으로 이전·복원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전·복원 방침은 미쓰비시사택지의 본래 장소성을 없애고 복제품을 만들 뿐이다.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이 불가피한 상황에 의해 멸실되거나 사라졌을 때 취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인 것이지 현재의 상황에서 취할 방법은 아니다. 더욱이 일각에서 제안하고 있는 3D복원이나 디오라마 등은 더욱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미쓰비시줄사택의 장소적 가치를 남기면서도 주민편의를 위한 생활개선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다른 지역의 경우들을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소막사였던 부산의 우암동 소막마을이나 집창촌이 있던 대전 정동 골목은 쇠락한 지역을 문화적 재생의 거점으로 바꾸는 노력이 지금도 진행 중인 지역들이다. 또한 소록도의 100주년기념관은 주차장 조성을 위해 한 마을을 거의 다 철거하던 중, 하나 남게된 병사(病舍)를 고쳐 현재 소록도 안내소 역할을 하고 있다.

인천은 주차장 부지 확보를 위해 2012년 아사히양조장을 철거하고, 2017년에는 애경사를 철거하는 우를 이미 범했다. 최근 신일철공소 사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제 부평에서마저 똑같은 과오를 반복할 것인가. 부평에 겹겹이 쌓여 있는 시간의 흔적들은 지워버려야 할 낡은 것이 아니다. 병참기지화와 한국전쟁, 그 이후 산업화까지 이어지는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압축되어 있는 소중한 자산들이다. 소중한 역사문화자산들을 그저 낡은 옛것으로 치부하고, 역사소비의 대상으로서 관광만을 강조할 일이 아니다. 그 장소성에 주목하며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연경 인천대 지역인문정보융합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