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외세의 압력과 일제의 침략에 저항하는 3·1운동이 거국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국 상해에 수립됐다.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깊은 해를 맞이해 서구의회 의정 연구단체 '우리 땅 우리 문화 바로알기 포럼'은 항일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보고자 상해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우리 땅 우리 문화 바로알기 포럼'은 서구 곳곳의 역사적 의미가 남아 있는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그 관리 현황을 조사해 왔다. 이번 상해, 항주 등의 독립운동 유적지를 둘러보는 여정도 3·1운동 발생지 중 하나로서 서구 완정사거리에 위치해 있는 당하지구 5호 어린이 공원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상해임시정부 앞에 도착해 보니 안내 현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정도로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당시에는 이마저도 임대료를 못내 고생했다고 한다. 이 좁은 골목에 초라하게 자리 잡은 역사현장이 마음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10여 년 전, 중국이 재개발 과정에서 고도제한 등 우리나라를 배려하겠다는 약속 이후로 청사 인근이 보존되어 오고 있다.

임시정부는 독립 운동사에 큰 획을 긋는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를 계기로 세계 열강국의 관심과 중국 국민당 장제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았다.

하지만 눈에 불을 켠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상해에서 항주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이 근처에는 한국독립당의 사무실인 사흠방과 임정 요인들과 그 가족들이 주거했던 오복리가 있다. 임시정부청사를 마련하기 전에 잠시 머물렀던 곳이지만 이젠 호텔이 되어버린 군영반점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김구 선생이 일본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던 피신처 여러 곳과,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그마한 목선 위에서 회의를 하고 은신처에서 언제든지 배를 타고 탈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까지 한 것을 둘러보면서 그 긴장감마저 생생히 눈에 펼쳐지는 듯했다.
상해로 다시 돌아와 독립투사들이 묻혀 있는 만국공묘에서 목례를 하는 것으로 역사문화탐방 일정이 마무리됐다.

3·1운동 당시, 당하지구 5호 어린이 공원 주변 일대에서 지역주민 300여 명이 모여 독립운동을 일으켰던 만큼, 인천의 3·1운동 주요 발상지 중 한 곳으로서의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국내에 있음에도 보존 자체가 전무한 상황이다.

우리 서구에서는 잔디와 무대, 운동기구만 있는 일반적인 공원의 모습을 역사적 테마가 살아 숨 쉬는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 서구는 애국지사의 후손 자택을 방문해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독립유공자 명패를 직접 달아 드리는 행사를 시작했다.
서구의회는 여기서 더 나아가 서구 관내의 독립 및 현충시설 유적 관리에도 노력해 애국정신 선양에 앞장설 방침이다.

심우창 인천 서구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