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기관 용어에 외국어가 난무하고 있음에도 문제의식이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15개 광역자치단체의 보도자료를 분석한 결과 8509건 중 8386건에서 외국어가 1개 이상 등장했다.

가장 흔한 것은 포럼이었고 워크숍, AI(인공지능), MOU(양해각서)가 뒤를 이었다. 특히 문화·복지·첨단 분야에서 외국어 남용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자치단체들이 실시하는 정책에 외국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인천 중구는 국내 최초로 누들(국수)을 주제로 한 복합문화공간인 '누들 플랫폼'을 내년 9월까지 자유공원 일대에 조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누들과 플랫폼(승강장)의 언어 연관성이 떨어지는 데다, 대표적인 서민음식인 국수를 굳이 영어로 표기해야 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인천 부평구문화재단은 부평아트센터에서 '헬로 브릭'을 진행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으로 창의력을 키우는 행사인데, 아이들이 브릭(brick, 장난감 벽돌)이라는 어려운 영어를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경기도 부천실버인력뱅크는 노인일자리 역량을 강화하는 '시니어 리더스쿨'을 운영했는데 참가한 노인들은 거창한 명칭에 헷갈려 했다고 한다.

아예 공공기관 명칭을 외국어로 바꾸는 현상도 흔하다. 한국철도공사는 공식적으로 '코레일(KORAIL)'로 불리며, 한국토지주택공사는 'LH'에 주 명칭 자리를 내주고 보조명으로 전락했다.

거의 모든 건설업체가 아파트 이름을 현란하고 국적 불문의 외국어로 도배하는 행태도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공공기관이 외국어 사용에 앞장을 서는 모습은 해괴하다. 이런 문화는 신(新)문맹을 낳는다. 이러면서도 한글날만 되면 세종대왕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들먹이는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문체부는 행정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어려운 외국어와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을 내년 1월부터 펴기로 했다. 무분별하게 쓰이는 외국어를 참신한 우리말로 바꾸는 '새말모임'도 꾸린다고 한다.
늦은 감은 있지만 제대로 된 발상이다. 이런 노력들이 지방자치단체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