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이다. 점심을 먹으려고 부평 미군부대(캠프마켓)를 찾았다. 신문사 회장을 따라서 처음 갔던 미군부대 내 식당엔 한국인도 꽤 많았다. 여기저기 호기심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민간인 신분으로 어떻게 갔을까. 사연은 이렇다. 당시 캠프마켓은 극히 특정한 일부 한국인에게만 출입을 허가하는 '카드'를 내주었다. 물론 지역사회에서 '내로라' 하는 인사들에게 한정된 발급이었다. 그래도 이들은 미군 이용 식당을 벗어나지 못했다. 식당 외엔 돌아볼 엄두를 내지 못하던 때였다. 특성상 이해는 가도 지난한 우리의 현실을 보는 듯해 적이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민간인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던 캠프마켓 역사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 날이 왔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이 주둔하던 캠프마켓이 시민 품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1일 평택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위원회를 열고 반환을 미루던 4곳의 폐쇄 미군기지를 돌려받는 데 합의했다. 캠프마켓(부평), 캠프호비(동두천), 캠프이글(원주), 캠프롱(원주) 등 4곳이다. 오염 정화에 대한 책임, 기지 환경관리 강화 방안, SOFA 관련 문서 개정 가능성 등에 관해 협의를 계속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여태 일을 하지 않던 이들 미군기지의 반환을 미룬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부대 내 환경 정화 비용을 누가 부담할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왔다. 일단 우리 비용으로 반환기지 오염을 정화하기로 했는데, 오염 책임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미국 측과 협의한다고 정부는 밝혔다. 오염 정화 비용의 경우 캠프마켓이 773억원으로 가장 많다. 나머지는 20억~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환경부 조사 결과 캠프마켓에선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선진국 기준치에 비해 최대 10배 검출되기도 했다. 고농도 다이옥신은 청산가리 1만배의 독성 발암 물질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부평구 도심에 위치한 캠프마켓은 1930년대 일본육군인천조병창의 후신이다. 일제는 중일전쟁 당시 대규모 병참기지를 부평에 세웠다. 조병창은 한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기제조 공장. 물자를 쉽게 운반할 수 있었던 경인철도가 한몫 톡톡히 했다. 이래저래 인천은 일제의 한반도 물자수탈에 적합한 곳으로 꼽혔다.

광복 후론 미군이 한참동안 조병창을 군수기지로 써왔다. 2011년 미군은 철수했어도 그동안 돌려받지 못한 캠프마켓의 역사는 이렇듯 '외세득세'를 상징한다. 이제 미군이 떠난 '알토란 땅'(149만여㎡)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큰 틀로 접근해야 한다. 비록 속도는 늦더라도 인천시 전체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지 깊은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이문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