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상담실을 찾은 20대 A 여성은 "저는 자존감이 낮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죽음, 왕따 등으로 친구관계에서 부적응과 가족관계에서 소외됐다. 4학년 때 학원에 가면 친구가 다른 한 명과 합세하여 나를 괴롭혔다. 변기통에 빠지라고 하고 죽으라는 협박을 받았다. 그때의 트라우마는 지금도 남아 있다"며 울먹거렸다. "그 당시 영이란 친구는 학원에서 나를 심하게 괴롭혔다. 자기집에 데리고 가서는 구강성교를 시키는 듯 이상행동을 보였다. 칼을 들고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이 무서워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거의 세 달 동안 친구의 강압으로 지내다가 아버지가 알게 돼 마무리됐지만, 나의 상처를 외면하는 아빠를 원망했다"고 고백했다.

A 여성은 아직도 친구가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한다든가 하면 더 깊은 상처를 받고 내면세계에서 폭풍처럼 분노가 일어난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가까이 다가가기가 어렵고, 마음의 문을 열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다 가짜라고 생각했다. 또다시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어벽이 정작 필요한 사랑과 애정, 관심까지도 막아버렸다.

A 여성의 내면화된 깊은 수치심은 보통 자신을 숨기려고 하고 멀리하려 한다. 수치심을 느낄 때 우리는 하와와 이브처럼 창피함을 느끼며 숨고 싶다. 수치심의 정서는 속상하고 창피해서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기도 힘들다. 공포스러운 감각으로 현기증이 나며 어지럽고 방향감각을 잃어버려 구역질이 나기도 한다.
자기비난과 수치심은 서로 연관이 있어서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친구의 학대나 비난을 나로부터 분리하듯이 외면화하지 못하고 자신이 '나쁜 존재', '가치 없는 사람'이라며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아니면 자신의 수치심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화를 내 수치심을 없애려고 한다.

내 안에 내면화된 수치심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내가 어떻게 다루어서 키웠는지 살펴보면서 인생에 어떤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나에게 수치심을 자극하는 사람, 행위는 무엇인지,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들을 때인가 거부당할 때인가도 살펴야 한다.

수치심을 줄이기 위해서는 친구가 안겨준 수치심과 친구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당한 분노로 바꾸고 자기비난을 줄여나가야 한다. 개인이 학대 당한 사건이나 트라우마를 잘 들어주고 수용해주는 사람에게 충분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안전한 대상과 환경에서 언어로 억압된 감정들을 충분히 풀어냄으로써 부정적인 감정들을 빼내고 감정의 정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자기 공감과 수용으로 변화해야 한다. "얼마나 힘들어 했니", "얼마나 슬프고 속상하고 화가 나고 역겨웠니"라며 공감하면서 변화하려는 동기와 의지를 심어줘야 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는 열등감도 내려놓도록 노력해야 한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좋다, 나쁘다', '잘났다, 못났다' 등 이분법적인 사고를 만든다.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인 나를 인정하고 받아줄 거라는 긍정적인 사고가 중요하다. "넌 그 자체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야"라며 나의 모습 그대로를 좋아하고 인정하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좋은 말이나 지지를 보내면 감사히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그러면 수치심의 언덕을 넘어서 높은 자존감의 희망으로 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