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9년이 흘렀다. 군사정부의 시퍼런 서슬이 사회전반을 관통했던 1980년대. 모든 것이 억눌리고 숨 죽여야 했던 시절이었다. 황무지나 다름없던 불모(不毛)의 시대였다. 1980년 11월 강제 통·폐합의 격랑에 휩쓸려야 했던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기를 7년 여, 6·10 항쟁 이후 분수처럼 솟아오른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의 물결 속에 그간의 각종 억압이 완화되거나 해제되기 시작하면서 언론도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1988년 7월15일, 인천일보의 출범을 알리는 돛이 힘차게 올랐다. 오랜 기간 지역언론의 존재를 갈구해온 주민들의 활화산 같은 기대와 성원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건전한 지역언론 창달'을 기치로 출발한 인천일보가 창간 29주년을 맞았다.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29년의 세월을 되돌아본다. 과연 인천·경기지역 주민들의 바람에 부응했는지, 건전한 지역여론을 조성하고 이끌어왔는지, 잘못된 정책에 대한 대안적 비판의 자세는 견지해왔는지, 언론 스스로의 그릇된 도그마에 빠진 적은 없는지… 충실한 역할의 부족을 뼈저리게 느끼는 자성과 함께 앞으로 인천일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져야 하는, 그런 시간이었음을 독자 제위께 솔직히 고백할 수밖에 없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정치제도의 효율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탄핵에 의해 대통령이 물러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 이르기까지 촛불을 통해 보여준 국민의 힘은 위대했다. 민흥무사특(民興無邪慝), 국민이 정신을 차리면 나라에 간사하고 속이는 무리가 나타날 수 없다는 교훈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정국의 혼란이 간단없이 이어지면서 침체된 경제상황도 좀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계층 간, 기업 간, 개인 간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북핵으로 촉발된 한반도 주변의 정세도 녹록지 않다. 돌파구를 찾기가 여간 쉽지 않은 형국이다.

지방자치제도가 부활된지 20년이 지나면서 '권한의 재정립'을 요구하는 지역의 목소리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방분권에 대한 주창은 대표적 사례다. 민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선거를 의식한 각종 선심성 정책을 하루가 멀다 하게 쏟아내고 있다. 어느 것이 언제 시작되고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끝난 것은 무엇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다. 흐지부지된 사업에 투입돼 헛되이 낭비된 혈세는 또 얼마인지. 도무지 앞뒤 분간이 어려운 상황이다. 역으로 이는 언론의 역할이 그만큼 더 늘어나고 중요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건강한 언론과 건전한 시민의식이 사회를 꼿꼿하게 지탱시키는 원동력이라는 명제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창간 29주년을 맞아 우리 인천일보 임직원들은 겸허한 자세로 다시 한번 마음을 추스린다. 정론을 통해 언론 본연의 노릇을 다하면서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행복 증진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다짐을 밝힌다. '기자의 사명은 침묵에 목소리를 주고, 무고한 이들의 증인이 되고, 화려한 수사로 위장한 거짓을 밝히는 것'이라는 자세 아래 불합리한 정책의 오류를 적발하고 바로잡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중앙권력의 부당한 간섭에 지역이 침해받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지역의 여론이 배타적 이기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늘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주민생활과 밀접한 소비자 위주의 기사 발굴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소외된채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주변의 이웃에 더 많은 애정을 쏟겠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인천일보 구성원들은 끊임없는 교육을 통한 자기계발과 정신재무장을 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언론은 공기(公器)다. 회사와 종사자들의 이익에 앞서 막중한 사회적 책무실천이 우선되는 조직이다. 그런 언론이 이권만 추구하거나 외풍에 흔들리면서 제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건강한 사회'는 요원한 길일 수 밖에 없다. 궁불실의(窮不失義), 어떤 어려움에 처해도 도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인천일보 임직원들은 초심을 잃지 않고 앞으로도 지역주민들을 위한 길이라면 그것이 늪이든, 진흙탕이든, 모래밭이든 가리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갈 것임을 창간 29돌을 맞은 엄중한 날,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분명히 밝혀두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