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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원의 사람냄새] 내일은 어떻게 오는가?  

황해문화편집장

2017년 06월 13일 00:05 화요일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인해 빙하기에 가까운 기상 이변이 닥친다는 내용의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뉴욕시립도서관으로 피신한 일행이 도서관의 장서들을 태워 몸을 녹이려 하자 한 사람이 "이 구텐베르크 성경은 세계 최초의 인쇄물이야. 이성의 시대를 오게 한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지. 넌 비웃을지 모르지만, 난 인간의 문명이 멸망하더라도 이것만큼은 지키고 싶어"라고 말하는 대목이었다.

그냥 영화적 허구일 뿐이라 할 수도 있지만, 실제 역사에서 이와 흡사한 일은 여러 번 있었다. 아문센과 남극점 탐험 경쟁을 벌였던 스콧 탐험대는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마침내 목숨을 잃는 순간까지 탐험 도중에 발견한 고생대 후기 식물화석을 버리지 않았다. 몸조차 가누기 힘든 상황에서 이들은 무거운 화석을 무려 650킬로미터나 끌고 왔다. 만약 스콧 일행이 중도에 화석을 버렸더라면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이 숨진 곳으로부터 불과 16킬로미터 지점에 물자보급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가져온 화석은 훗날 대륙이동설의 중요한 과학적 증거가 되었다.

소련의 레닌그라드에는 러시아 시절부터 100여 년 간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25만 점의 식물표본과 34만 종의 종자가 보관된 바빌로프 식물자원연구소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레닌그라드는 무려 900일 동안 독일군에 포위되었고, 적의 포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격과 식량부족으로 죽어갔다. 연구소를 지키던 50명의 과학자 중 31명이 영양실조로 숨졌지만, 단 한 톨의 종자도 훼손되지 않았다. 외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간송 전형필은 한국전쟁 기간 동안 훈민정음 해례본을 필사적으로 지켜냈고, 우현 고유섭의 제자들 역시 선생의 유고를 험난한 피난길에도 목숨처럼 지킨 덕분에 그의 연구 성과들이 보존될 수 있었다. 그런가하면 같은 시기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던 연구원들 역시 가족보다 볍씨 천여 종을 비롯한 수많은 종자들을 앞세워 피난 보냈다. 오늘을 살기 위해 100여 년 전의 근대건축물을 부숴 주차장을 만드는 인천은 내일을 위해 무엇을 지키고, 또 남길 것인가.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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