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철 서양화가

매년 스승의 날만 되면 더욱 생각나는 선생님이 있다. 송덕빈 선생님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생님을 직접 만나 뵙게 되었으니 올 스승의 날은 매우 의미 있는 날이 됐다.
선생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으로 향했다. 50년 만에 선생님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며 선물을 드렸다. 이 포도주는 직접 발효시켜 병입까지 시킨 술이고, 라벨도 선생님을 위해 따로 아크릴 페인팅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포도주라 설명해드렸다. 그제야 "아! 그렇다면 내 이 술은 오랫동안 보관해야지…" 하셨다.

미술부는 아니었지만 역시 나처럼 선생님이 담임이었던 박문수 선배는 오늘도 제일 먼저 나와 선생님 곁을 지키며 잔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박 선배는 지난해 초등학교 교장으로 교직에서 퇴임했다. 초로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천진난만한 중학교 소년으로 돌아간 듯 그 옛날에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외국 가곡을 힘차게 불렀다. "한 척의 배가 있다. 한 척의 배가 있다. 그러나 그 배는 한 번도 항해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배는 한 번도 항해한 적이 없다." 선배께서 노래를 하고 있는 동안 선생님도 조용히 따라 부르셨다. 마치 화음이라도 넣으려는 듯.

미술부원이 아니었으면서도 선생님께 감화를 받아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가 또 한 명 나타났다. 정석원 초상화가다. 정 작가는 선생님의 초상화를 멋지게 그려 액자에 담아왔다. 나 역시 미술부원은 아니었지만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가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해 오면서도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로망을 놓지 않게 했다.

이번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의 전시에 이어, 인천 전시회까지 선생님의 전시를 위해 전력을 아끼지 않은 미술반 제자들은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수준 높은 작가로 성장해 이번 전시회를 더욱 빛내고 있다. 그림과 조각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이라도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한기주, 고정수, 노용래, 정현, 김창곤 등이다. 사실 선생님의 스승으로서의 참된 뜻은 미술이라는 카테고리에 제한되지 않았다. 

선생님이 담임을 맡은 반은 무조건 다음해 진급해서도 전원 상위권에 들 수 있게 방과후 종례시간에 영어단어시험을 치러 단련시켰다. 나 역시 그런 여러 학생 중 한 명이었다.

점심시간에 인천남고 11회 동창회 대표 4명이 전시장을 찾아왔다. 4명 중 두 사람, 양철민 이서용 두 선배는 미술부원이었다. 다른 둘, 김종황 안귀철 선배는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김종황 선배는 70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소년 같은 동심이 되어 손바닥을 내보이며, 단어시험보고 나서 99대를 맞았다면서 선생님의 그 때 그 매가 날 성장시켰노라 감사했다.
50년만의 스승의 날 행사는 근처 차이나타운 레스토랑에서 진행됐다. 제자들을 대표해 고정수 선배가 꽃과 선물을 전달했다.

식사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한 명의 제자가 전시장을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고, 선생님은 먼저 자리를 일어나셨다. 이번 전시회 소식이 인천일보와 인터넷 등 여러 언로를 통해 전달되면서 선생님을 평소 그리워하고 있던 많은 제자들이 속속 전시장을 찾아왔다.

선생님을 찾아온 제자들은 자연스럽게 송덕빈 선생님을 사랑하는 모임 '송사모'를 만들어 계속해서 교류와 소통의 모임을 추진해 나가자고 뜻을 함께 했다. 이러한 모임은 선생님만을 위한 한 방향의 모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생님을 그리워할 수 있는 우리 제자들 모두의 자리였고, 양 방향의 교류이기도 한 것이다.

어느덧 하루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댁까지 모시겠다는 제자들의 권유를 사양하고, 등에 짐을 지고 뚜벅뚜벅 인천역 쪽으로 걸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한없이 위대해 보였다. 

"선생님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우리들 곁에 머물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