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규 시인
우리들이 살고 싶은 나라는 어떤 국가인가, 힘과 부를 겸비한 나라를 지향하면서 건국한 '근대 보통국가'는 백년도 못되어 수없이 많은 난제들을 풀지 못하고 속으로 곪아가고 있다. 부국강병의 척도인 자본은 독점화 되고 언제나 정치와 유착되어 있다.

소득의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가계부채와 나라 빚은 천문학적인 수치를 해마다 갱신하고 있다. 막대한 국방비를 써가면서도 강대국에 끌려 다니는 안보 위탁 상황은 중심도 내용도 없이 '의존증'만 깊어가고 있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 '인민'이 곧 '국가'인 사람의 보편적 가치를 민주주의 정치는 상식에서 찾는다. 상식은 쉽고도 어려우며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이렇게 간단치 않은 상식 안에서 쉽고 명료하게 국민 곁에 늘 머물러야 하는 정치, 상식이 무너지면 한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걸 우리는 바로 엊그제 경험했다.

박근혜 정권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세간에 드러날 무렵 촛불과 함께 처음으로 들고 나온 피켓이 "이게 나라냐?" 였다. 마침내 국민의 자존심이 무너져 바닥을 친 것이다. 가뜩이나 어렵고 답답한 시절에 시원한 정책 하나 없는 정부를 질타하던 시민들이 참다못해 자기도 모르게 탄식처럼 내뱉은 말이었다. 그 원인의 배후는 지도자의 독단이었다. 아집이었다. 불통이었다. 그녀를 부추긴 측근과 바로잡지 못한 인사들이었다. 굵직한 대내외적 현안들이 국민의 동의 없이 결정되었다. 막대한 손해와 치욕이 따라왔다. 국가 수장의 감정적 결단이 불러온 국정 오류로 인해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이 심하게 훼손됐다. 서민 살림은 갈수록 빠듯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창조경제'가 한 몫을 더했다. 너무 아리고 아파서 스스로 상주가 된 노란 리본들에게 거짓과 위선으로 농락했다. '문화융성'의 다양성을 검은 봉투 속에 봉인한 '블랙리스트'가 정점을 찍었다. 마침내 시민들이 일어서 권위뿐인 권력의 어두운 밀실에 촛불을 들이밀었다.

촛불이 무너져가는 자존심을 서로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촛불시민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여전히 진행형이다. 아직 바뀐 게 없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겨우 대의제가 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을 시민들이 나서서 끌어내린 게 전부다. '이제 할 일 다 했다.' 라고 생각한 순간, 역사는 그 위대한 시민들의 노고와 희생을 엉뚱한 정치에게 여러 번 도둑맞았다. 이번 정권은 촛불이 세운 정권이다. 촛불은 이제 새 정권과 대의권력의 내부를 비추고 들여다 볼 것이다. 만연한 적폐,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 경제 민주화, 남북한의 매듭, 역풍의 사각지대에 엎드려 말로만 잔 돌멩이나 날리는 대의권력 등 여러 각도에서 정치 상황이나 역학의 셈법을 헤아리겠지만 끝내 상식을 벗어날 때, 국민들은 다시 일어설 것이다. 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이제 촛불은 학습된 시민의식을 확대 심화하여 대의제의 한계를 보완 견제하는 시민참여의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체로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에 대해 확고한 믿음이 없다. 그간 국민들이 겪은 대한민국 정부와 정치의 현주소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부나 정치인이 하는 말이 사실인지, 정권 유지를 위한 치적 중심의 연출인지, 괜찮다 괜찮다, 하면서 낭떠러지 앞에 국민들을 몰아세우는 것은 아닌지, 이제 일간지 머리글만 읽어도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국민들의 눈은 예리해졌고 의식의 깊이와 넓이는 확장되었다.

이제 출범하는 정권은 추락한 국민들의 자존심을 어떻게 일으켜 세울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 자존심이 곧 국가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의외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읽어내는 일은 쉽고 간단하다. 가령, 축구나 야구 경기에서 일본이나 미국을 이겼을 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나라를 이겼을 때보다 몇 배 더 오래 간다. 그런데 북한과 경기를 할 때는 웬지 서로 최선을 다 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저 바닥에 웅크리고 있다. 올림픽 경기에서 북한이 다른 나라와 경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북한을 응원하고 있더라는 많은 남한 선수들의 고백은 북한 선수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현재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있는 안보 관련 국제정세에 대한 다수 국민들의 솔직한 감정과 정서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보이지 않는 '피의 표면장력'이다.

이제 위선의 옷을 벗자. 어깨 좀 펴고 살자. 어쩔 수 없이 어떤 상황에 부득이하게 끌려가더라도 마지막으로 국민의 자존심만은 바닥에 내동댕이치지 말자. 매번 정권이 끝날 때마다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빼고 나면 넘치는 음식물 쓰레기뿐인 파렴치한 정권의 연속이라면 국민들의 분노를 넘어서 그것은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그리하여 먹고살기도 바쁘고 힘든데 나라 걱정하는 국민들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또한 얼마나 슬픈 일인가.

바라건대, 서럽고 슬프고 힘들어도 걱정과 걱정이 보태져서 나라가 맑아지고 순탄해진다면 이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