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물었다, "우리 딸이 결혼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라, 하고 싶은 게 많다면서. 너도 그렇니?"라고. 적지 않은 중장년층의 부모들이 자식 세대의 비혼 선언에 대해 '비혼-비육아-가족을 이루는 삶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더욱 중요함'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생각하는 듯하다. 그 반대편인 '결혼'의 축에는 '육아-가족의 삶, 즉 새로운 경험,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남' 등이 따라붙는다.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비혼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그게 맞다'고 말해야겠다. 가령 비혼이 자신의 커리어나 자신의 삶을 우선시하는 것의 한 형태라는 것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도덕적·윤리적 비판의 이유가 될 수 없는 것은, 결국 각자의 삶에서 모두는 자신의 삶을 최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결혼이나 육아가 '나'보다 '타인'을 생각하는 한 계기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것을 모두 부정할 필요도 없겠으나, 엄밀하게 말해 개인의 삶에서 온전히 타인을 위한 희생이란 없다. 예컨대 부모의 희생이란 온전히 '자식'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자식을 위하는 삶'이란 애초에 '부모 자신을 위한 삶'의 한 기획의 한 방향이기도 하다.

'각 개인은 각자의 삶을 최우선한다'는 명제에 근거하면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도 사실은 개인의 삶의 자유에 의해 판단돼야 하는 것일 뿐 절대적인 길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비혼'이 반드시 '비육아'로 이어진다고 할 수도 없다. 비혼이면서 육아를 하는 삶이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선택이라면 그저 그뿐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불경하게 여겨질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혼·결혼 둘 중에 꼭 무언가 하나를 '절대 선(善)'으로 상정해 다른 것을 비판하는 근거로 삼을 필요는 없다. 결혼을 해서 육아를 하는 삶이 소중하듯이 그 반대편에 놓여 있는 삶도 소중하다. 타인의 삶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에서 자신의 자유도 가능해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비혼 #비육아 #결혼 #육아 #삶의자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