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최근에 지나가다가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한 여성 인턴이 있다. 그녀의 인턴 생활은 쉽지 않다. 파트너와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이지만 그래도 그녀는 힘을 내본다. 첫 행사(?)를 마무리 짓고 팀장 및 선배 사원들과 격려차 회식을 함께 하기로 한다. 그들은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한다. "어? 고기가 없네?", "OO 씨, 깻잎도 없다", "술도 다 마셨네"라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여자 주인공은 "이모님"을 연신 부르다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제가 갖다드릴게요!"

이 장면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부차적인 정보를 더 제공해야 하겠다. 이 장면에는 발랄한 배경음악이 깔려있다. 게다가 이후의 장면 전환으로 미루어봤을 때 이 장면은 '비록 쉽지 않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다지도 열심히 노력하는 여자 주인공'의 이미지를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장면에는 '노오력'하는 청년 군상의 모습을 미화시킨다는 혐의가 있다. 어째서 인턴은 회식 자리에서 온갖 뒤치다꺼리를 자처하고 있으며 그 배경에 왜 싱그러운 음악이 깔리는가? 인턴은 회식 자리에서 고기를 굽고 서빙을 책임지려고 회사에 지원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회사도 그런 업무를 지시하기 위해서 사람을 고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시 이러한 상황을 사회생활을 배워가는 과정의 '융통성'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이것은 '융통성'이라고 말하기도 어렵거니와 어째서 '융통성'은 말단 직원만이 갖춰야 하는 덕목처럼 여겨지는지도 의문이다.

'융통성'에 으레 따라붙는 대사라고 한다면 "젊은 사람이" 정도일 것 같다. 비단 드라마의 한 장면뿐만 아니라, 사회의 많은 기성세대가 청년의 젊음을 담보삼아 무례한 '융통성'을 요구한다. 부당한 요구의 근거에 '젊음'이 이유로 자리한다는 것은 참 우울한 일이다. 이걸 '융통성'이라는 이름으로 미화하고 재생산하는 일을 보는 것도 달갑지 않다. 사회가 젊음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니까 젊음이라는 소중한 자원이 말도 안 되는 '융통성'과 회식의 뒤치다꺼리의 명분으로 소비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 #드라마 #청년 #혐오 #융통성?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