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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개항장이야기 21] 개항장 관세(關稅) 이야기  

강덕우 인천시 역사자료관 전문위원

2017년 01월 12일 00:05 목요일
▲ 초기의 인천해관
▲ 인천세관청사 설계도
근대 개항장에서의 관세징수는 한 국가가 외국으로부터의 상품유입에 맞서 국내 산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취해지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근대적 통상외교의 경험이 없었던 조선은 관세에 대한 인식을 갖지 못한 채, 일본이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강화도조약의 '무관세' 조항에 기만당함으로써 관세자주권을 스스로 포기한 결과를 초래했다. 1876년 부산을 개항한 뒤, 뒤늦게나마 관세 수세를 위한 재협상을 요구했으나 끝내 결렬됐고 이에 따라 조선은 부산 두모진(豆毛鎭)해관을 독자적으로 설립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됐다. 하지만 대일 교역품의 가격이 상승함에 따라 일본은 급기야 군대를 동원해 무력시위를 벌임으로써 조선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초기의 인천해관>
관세의 부과는 1882년 5월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일단 결실을 보면서 1883년 인천 개항부터 관세 징수권을 인정받게 됐다. 부산 개항 후 7년 여의 세월이 지난 뒤였다. 조선정부는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초청해 조선 해관을 관리토록 하고, 중요 해관원의 인사(人事)를 중국 해관에 의뢰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렇게 한국 최초의 세관인 인천해관은 1883년 6월16일부터 수세 업무를 시작했다(원산 6월17일, 부산 7월3일). 개청 당시 인천해관에 배치된 직원은 모두 외국인으로 세무사 스트리플링(Stripling, 영국)을 비롯해 영국인 1명, 독일인 3명, 러시아 프랑스, 미국, 청국, 이탈리아인이 각각 1명씩 모두 9명이었다.

조선인으로서 인천해관에 처음 배치된 사람은 1883년 설치된 관립영어학교에 입학해 1년 간 영어를 배운 뒤 배출된 제1회 졸업생 홍우관(洪禹觀)이었다. 그의 급여는 동료 외국인 해관원들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멕시코 달러 6달러였지만 국내 물가나 생활수준을 고려하면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한다.

인천해관의 관세수입은 개항과 더불어 신설된 각종 기관의 경비 일부 및 기관에 고용된 외국인의 급료로 지출됐고 이러한 정규적인 지출 이외에도 인천항만 설비의 수축과 관리, 제물포 조계지 측량, 기상 관측, 갯벌 매립 토목공사, 등대설치 등 각 해관의 제반시설비 및 개항장 내의 각국거류지 공사비로 충당됐다. 그리고 정부의 지시에 따라 유학생 파견비, 친군영 및 광무국의 경비, 외국에 대한 각종 배상금으로도 지출됐다. 또한 용도를 밝히지 않는 명목으로도 정부에 상납되기도 했다.

해관의 관세는 조선 정부가 제국주의 열강에게 대외 차관의 담보물로 제공할 수 있는 제1급의 저당물이었다. 이는 관세수입이 당시 조선정부의 가장 중요하고도 확실한 재원이었기 때문에 청·일 및 구미열강에서의 차관은 대부분 관세수입을 담보로 성립됐다. 수출입세와 톤세로 구성되는 관세는 해관 창설 직후인 1884년 2월 당시 총세무사 묄렌도르프가 해관세 수세업무를 위탁계약형식으로 일본제일국립은행에 양도했다. 일본은 이들이 확보한 해관세 취급의 이권을 방패로 서구 열강의 차관 제공을 저지하기도 하고, 원리금의 상환을 고의로 지체토록 해 관세의 국고화를 저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예속되는 것은 시간상의 문제였다.

<인천세관청사 설계도(1911년)>
인천해관은 관세행정의 효시로 외국상품의 집적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상주하는 국제도시로 탄생하는 견인차 역할을 했고, 관세 수입은 매년 증가해 정부재정에 응급적이고도 다각적인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나 개항에 수반하는 효용적 자금으로 운용되지 못하고 단지 궁핍한 재정을 타개하기 위한, 국고의 수입증대를 위한 신재원으로만 파악됐기에 표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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