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선 개통과 함께 시작된 '인천의 관문'
▲ '동인천역'은 경인선 개통하던 1899년 문을 열었으며 '민자역사'(사진 가운데 건물)는 1989년 5층 건물로 처음 들어섰다. 동인천 일대는 청과물, 대한서림, 인현통닭 등 인천의 전통적 장소가 즐비하다.
▲ 민자역사가 들어서기 전 동인천역 전경. 택시가 서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역명' 1899년 축현역 → 1926년 상인천역 → 광복 후 동인천역
1989년 동인천민자역사 건립 … 인천백화점 문 열고 성업
역 주변 대한서림·인현통닭삼계탕 등 오랜 시간 함께 해

차가운 아스팔트 위. 겨울바람이 만든 작은 회오리 안에서 바싹 마른 나뭇잎들이 빙빙 맴을 돈다. 동인천역사 앞 광장. 배다리, 인천항, 인천역 세 방향에서 들어오는 차들이 한 바퀴를 돌아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나아간다.

'동인천역사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분양/임대 문의…' 5층짜리 동인천역사 건물 정면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펄럭인다. 시행사인 동인천역사 주식회사가 붙여 놓은 것이다.

동인천민자역사는 1988년 착공, 이듬해 4월 15일 지하 3층, 지상 5층의 '인천백화점'으로 문을 연다. 남동구 '희망백화점'과 부평구 '동아시티백화점' 2군데 뿐이던 인천에 등장한 인천백화점의 등장은 쇼핑계의 빅뉴스였다. 4개의 지하상가와 연결돼 있어 개점하자마자 분양이 끝나더니 평일엔 6만 명, 주말엔 7만 명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1997년 IMF가 터지고, 1999년 인현동 호프집 화재참사까지 겹치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결국 2001년 셔터를 내린다. 이후 패션전문 쇼핑몰 형태인 '엔조이쇼핑몰'이 들어섰으나 2008년 문을 닫고 방치됐다가 현재 리모델링을 계획 중이다.

동인천역사 건너편 모서리에 서 있는 길쭉한 5층 건물 꼭대기층에 '대.한.서.림'이란 네 글자가 반짝인다. 인천사람들에게 '대한서림'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다. 1953년 지금의 건물 옆 2층 건물로 시작한 대한서림이 현재의 자리로 옮긴 것은 1989년이다. 대한서림 건물은 당시 '별제과건물'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1, 2층이 빵집(별제과점), 3,4층은 다방, 5층은 음악감상실로 운영되는 공간이었다. 빵집은 상견례나 미팅명소였다.

5층 별음악감상실은 1970년대~80년대 젊은이들의 문화해방구였다. 얼굴을 반쯤 가리고 뒷머리가 치렁치렁한 DJ '쭌오빠'는 청춘들의 '아이돌'이었다. 1970년대 별음악감상실 DJ를 지낸 윤효중씨는 "당시 별음악감상실에 입장하려면 대기표를 받아야 할 정도였다"며 "여대생들이 팝송과 같은 음악을 쪽지로 쓰윽 밀어넣으면서 DJ오빠에게 데이트신청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주말엔 댄스경연대회를 열어 상으로 금 한 돈을 주는 행사도 했다"고 말한다. 별제과 대신 지금 대한서림 건물 1층엔 '뚜레주르'가 향긋한 빵냄새를 풍기는 중이다.
대한서림 뒷쪽 축현초등학교가 있던 자리엔 초중고생들의 문화공간인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이 들어섰다. 대한서림에서 우현로를 따라 신포시장 방향으로 조금더 올라가면 고갯마루를 넘기 전 8층 건물 꼭대기 '콘서트하우스 현'이란 음악홀을 만난다. 인천 출신 음악인들로 구성된 'I-신포니에타'란 실내악앙상블이 연중 내내 다채로운 공연을 하는 콘서트홀이다. 이 곳에 가면 구수한 커피와 함께 다채로운 음악을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다.

동인천역 앞길의 공식이름은 '참외전로'이다. 1910년대 동인천역 일대는 참외재배가 성행했다. 참외를 파는 과일가게가 넘쳐났고 '채미전거리'라 불렸다. 과일향기가 풀풀 날 정도로 청과물가게가 즐비했던 이 곳엔 지금도 성환청과, 인천과일백화점, 동인천청과 정도가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과일가게 사이사이 건어물과 땅콩 등을 파는 삼영유통, 부일상회가 끼어 있고 '고우당'이란 골동품가게도 눈에 띈다.

동인천역사 철교방향엔 대형 악기사들이 성업 중이다. 허리우드악기사, 인천악기사, 할렐루야악기사와 같은 대형악기사들은 과거 화려했던 인천악기산업이 남긴 흔적이다.

동인천지하상가 3번 출입구를 나오면 '인현통닭삼계탕'이 나타난다. 1972년 문을 연 이 가게는 전통통닭구이 방식인 전기로 구워 기름을 쪽 빼낸 담백한 통닭구이로 지금까지도 인천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인현통닭 뒤쪽으로 조선시대 유물인 '용동큰우물'이 있고, 그 옆에 가천이길여산부인과 기념관, '배 터지게' 먹을 수 있는 잉글랜드왕돈가스, 백령도에서 갓 잡아온 해산물을 파는 백령포구에 이르기까지 동인천은 여전히 작지만 큰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울림을 전해준다.

1899년 경인선 개통과 함께 '축현(싸리재)역'이란 이름으로 들어선 동인천역은 예나 지금이나 인천의 관문처럼 이용되고 있다. 철로 양쪽으로 연못과 미나리논이던 이 곳에 처음 역사가 들어선 때는 1926년. 이때 역이름이 '상인천역'으로 바뀌었으나 인천사람들은 '축현역'으로 부르다 광복 직후 '동인천역'으로 개명한다. 어감으로 보나 역사성으로 보나 동인천보다는 축현이 더 정겹게 들리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글 김진국 기자·사진 유재형 사진가 freebird@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