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경제연구소장 UNESCO한국위원회 인천협회장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정말 재미있다. 그렇게 넓은 영역에, 그렇게 놀라운 고수(高手)들이, 그렇게도 많이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 이 세상이라는 사실에 때때로 경건함마저 느낀다. 물론 세상에는 이렇게 숨어 있어서 매체의 '발굴'이라는 손길을 기다리는 생활의 명인들 말고도 이미 만천하에 스스로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공인 고수들이 얼마든지 많다.

김연아, 박인비, 진종오, 양학선, 손연재, 대한민국의 양궁 대표선수들…. 굳이 운동선수들 말고도 각종 연주회와 전시회, 공연장에서, 매체들이 만들어내는 경연프로그램에서, 심지어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 강좌에서까지, 어떻게 했으면 저런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었을까 싶은 명인들을 우리는 수시로 만난다.
이러한 거의 초인적인 경지를 보여주는 고수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삶이 경이롭다는 것을 되새김하고, 그렇게 나를 자극하고 일깨우는 그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내가 어느 고수의 자리를 탐할 일이야 언감생심인 것이지만 자칫 게을러지고 세상의 짐이나 되기 십상인 삶의 자세를 경계하는, 그들은 얼마나 훌륭한 무언의 스승들인가.

그러던 중 한 플루티스트의 연주회에서 문득 작은 깨달음을 경험했다. 내 정도의 식견에도 연주는 좋지 않았다. 연주자는 열심히 강하게 플루트에 숨을 불어 넣었지만 악기는 그가 원하는 소리를 만들어내지 않았다. 결국 연주자의 호흡이 헐떡대고 있다는 느낌이 객석에까지 전해지고 말았다.

그가 그렇게 자신의 공연을 망치게 된 데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 현장만을 가지고 내게 떠오른 생각은 연주자는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악기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이 사용하는 악기가 어떤 원리에 의해 소리를 내는 것인지를 먼저 철저하게 학습하지 않고 악기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소리를 끌어낼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폐활량이 좋고 횡격막에 힘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한들 센 호흡만으로 플루트를 노래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바이올린의 스트링 위에 활을 얹어놓은 채 힘들이지 말고 미끄러뜨려보면 바이올린은 저 혼자서도 소리를 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결국 바이올린의 연주는 이러한 악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확장시키고 구성, 재구성하는 재주인 셈이다. 서툰 연주자일수록 활과 운지에 힘을 주어 누르게 되고 속도는 느려지고 악기는 탁하게 웅얼거린다.

어린 시절에 무술을 배운답시고 도장을 들락거릴 때 사범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몸에서 힘을 빼라는 말이었다. 힘을 빼라. 완력으로 하는 게 아니다. 몸과 주먹에 힘이 들어가면 느려지고 무거워진다. 파괴력은 속도와 집중에서 나오는 거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지금도 모든 사범들이 이 말들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다시 돌아보면 모든 달인과 고수들의 동작은 완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흔히 요령이라는 말로 일컫지만 그들은 그들이 해내는 작업의 역학적인 본질과 사용하는 도구, 소재의 성격을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정확하게 체득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신의 신체적인 기능들의 작동 원리를 어떤 이론가들보다도 거의 본능적으로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런 예가 물론 예체능에 국한하는 것은 아니다. 주자가 집대성했다는 대학에서는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의 '팔조목'을 정치의 요체로 가르친다. 세상을 다스린다고 나서기 전에 먼저 갖출 것들이 있는 것이거니와 무엇보다 자신이 다스리고자 하는 세상의 생김새와 운행의 법칙을 꿰뚫어야 하고 그런 바른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과 주변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다스리는 힘은 이러한 준비를 통해 자연스럽게 갖추어지는 것이니 고집이나 완력 따위를 강조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노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모든 힘은 자연의 이치 속에 스스로 잠재하는 것이니 순리가 곧 힘이고 오직 순리에 따르기를 물과 같이 하면(上善若水) 도에 가깝다고 했다. 공자, 노자 어디에서도 완력이 대접을 받을 일은 없다. 한비자의 신상필벌론이 완력 숭배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인가.
그런데 대한민국 전역에 완력의 전성시대가 있다. 보라는 나라의 모습은 보지 않고 친박, 비박, 진보, 보수의 쇠고집만을 내세우는가 하면, 먼저 꿰고 있어야 하는 도시의 조건과 현상은 제쳐두고 제 손으로 만든 개발의 환상을 심기에만 골몰한다.

임기(任期)와 표(票)에 삶을 묶어 매고 살아가는 딱한 처지들을 이해 못할 바가 아니라 할 것이나 소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임자 못 만난 플루트 같은 이 나라와 도시는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