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SBS골프채널·MBC-ESPN 골프해설위원

지난 주 영종도 스카이72 오션 코스에서 KEB하나 챔피언십이 열렸다. 미국 LPGA대회의 일환으로 아시아 지역의 투어를 몰아 개최하는 소위 '아시안 스윙'의 하나로 국내 KLPGA와 연합으로 개최됐다. 15년의 역사를 가진 대회로 이미 미국의 메이저 경기를 빼고는 가장 흥행이 높은 대회 중 하나로 정평이 난 대회다.
이런 역사적 대회가 열린 첫 날인 지난 13일, 박세리 선수가 1라운드를 마친 후 공식 은퇴했다. 박세리. 메이저 5승 포함 LPGA 통산 25승, 한국인 최초 상금 1천만 달러 달성(공식 금액 1258만 달러), 아시아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 입성. 숫자로 본 기록은 끝이 없다. 그가 남긴 업적은 돈으로 비교할 수 없다.
지난 1998년 한국에서 건너 온 피부가 햇볕에 검게 그을려 시골 소녀티가 날대로 나던 한 아시아인으로부터 놀라움의 서막이 시작됐다.

그 해 5월 메이저 대회인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더니 두 달 후인 7월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두 개의 메이저 대회로 시즌 2승을 하며 진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금년 전인지 선수가 비록 작년에 이어 금년까지 이어지는 메이저 대회 2연승과 타이기록이 됐다.

특히 이 대회에서 18홀 연장을 치르고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서든데스로 이어진 두 번째 홀에서 우승하던 당시 18번 홀에의 티샷이 페어웨이 왼쪽 해저드 지역 깊은 러프에 빠졌을 때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속에 발을 담근 채 두 번째 샷을 날리는 모습은 당시 외환 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큰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낯선 동양인 선수가 엄청난 실력과 뛰어난 정신력으로 LPGA투어 패러다임을 바꾸며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뽐내는 박세리를 보며 국내 소녀들은 '제2의 박세리'가 되기 위해 골프채를 잡았다. LPGA란 꿈을 꾸며 일명 '세리 키즈'들을 탄생시키며 현재까지 세계 골프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세리 키즈가 바로 박인비다. "박세리 언니가 물에 들어가는데 흰 발이 너무 신기하고 멋져 보여서 골프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하던 박인비는 박세리의 기록을 넘어서며 골프 여제로 군림하고 있다.

최나연, 유소연, 신데렐라 박성현까지 박세리에게 영향 받지 않은 선수가 없을 정도다. 한국 골프의 버팀목인 박세리의 떠나는 뒷모습이 쓸쓸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세리 키즈인 박인비와 함께 112년 만에 귀환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대 위업을 합작했다. 올림픽은 그 어떤 스포츠보다도 명예가 드높다.

박세리의 투어 선수 생활을 더 원하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박세리는 지난 수년 동안 왼쪽 어깨뼈 습관성 탈구 등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2개 대회를 출전했으나 모두 기권하고 재활에 힘써왔다. 하지만 오랜 기간 재활에도 불구하고 회복이 더뎌지며 결국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 이제 박세리가 떠났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앞으로도 후진 양성뿐만 아니라 골프 산업 전체에도 큰 기여와 업적을 남길 것이다.
한국의 골프 역사를 고 한덕춘, 한장상, 강춘자, 고 구옥희 등이 점화했다면 이는 드라이버샷에 불과했고 박세리는 이 티샷을 이어받아 세컨드 우드 샷을 정확하고 긴 호쾌한 타구로 날린 셈이다. 이제 남아 있는 세리 키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대를 이어 탄생하게 될 모든 영재 골퍼와 바로 우리 모두가 그린의 어프로치 샷과 깔끔한 퍼팅 마무리로 매듭짓는 숏 게임 플레이를 해 줘야 할 것이다.

박세리의 주요 기록
△데뷔= 한국LPGA 1996년, 미국LPGA 98년 △주요 수상= 올해의 신인상(1998) 베어트로피(2003) 헤더파 선수상(06년) △LPGA 통산 25승(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까지) △2007년 LPGA 투어 명예의 전당 입회 △프로 우승 32승= 한국LPGA 7승, 미국LPGA 25승(메이저 대회 5승), 아마추어 우승 30승 △미국LPGA 통산 상금= 1252만7576달러(130억 원) 투어7위, △생애 최저타= 61타(제이미 파크로거 클래식 2라운드, 1998년), △플레이오프 전적= 6전 6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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