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대학교 스포츠복지과 교수
▲ 서해대학교 스포츠복지과 교수

스포츠가 온 국민의 주목을 받는 시기가 있다. 바로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인 올림픽이 시작된 시기다.

올림픽은 자국을 대표해서 나간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스포츠의 장이다.

그곳에는 화합이 있고 열정이 있으며 아쉬움도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들은 금의환향하고 획득하지 못한 선수들은 극비리에 귀국해 스스로의 존재감을 숨기기에 바쁘다.

우리는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늘 말로는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다르다. 아무튼 2016년에도 올림픽은 어김없이 시작됐고 신구(新舊)의 메달리스트가 선명히 드러난다.

이번 제31회 리우올림픽대회에서는 우리나라 양궁대표팀의 활약이 놀랍다.

양궁대표팀은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전 종목 석권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남자단체전, 여자단체전, 여자개인전, 남자개인전 등을 한국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석권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양궁은 '한국대표팀을 가장 늦게 만나는 팀이 행운을 가져가는 종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 한국 양궁대표팀의 이번 올림픽 성적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 민족은 예부터 활쏘기를 잘했다. 과거 중국은 우리 민족에게 동쪽에 활을 잘 다루는 민족이라며 '동이(東夷)'라 호칭했다. 고구려의 편당에서도 필수과목으로 활쏘기를 가르쳤고 신라는 인재 등용에 있어서 글보다 활쏘기로 뽑을 정도였다.

이러한 전통은 고려, 조선왕조까지 계승돼 임진왜란 때 일본의 장수들은 '조선의 궁시(弓矢)와 중국의 창법(槍法)은 천하제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리 민족의 활쏘기 실력은 출중했다. 지금도 우리 민족이 활쏘기를 잘하는 것은 선조의 피가 아직 우리 몸 속에 흐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대표팀이 획득한 메달의 두드러진 특징은 해당 종목이 심판 재량과 거의 무관한 종목이라는 사실이다. 즉 양궁과 사격 모두가 표적을 향해 조준하는 명확한 기록경기로 승부에 관해 심판의 역할이 그리 크지 않다. 즉 우리나라 선수들은 눈에 보이는 비교적 명확한 승리가 결정되는 종목에서만 메달 획득이 두드러진다.

반대로 심판의 역할과 재량이 막강한 종목에선 우리 선수단이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인 종목이 펜싱, 유도, 레슬링 등이다. 이번 리우올림픽에서도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던 레슬링의 김현우는 심판의 이해되지 않는 판정으로 인해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대중매체가 이렇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국민이 모두 지켜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자행됐다.

하지만 한국체육사에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 심지어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참가한 1948년 런던올림픽대회에서는 더욱 심했다.

당시 한국레슬링의 간판이었던 서울의 황병관, 인천의 김석영 등은 올림픽의 첫 출전이었으나 실력이 출중하였기에 온 민족은 그들에게 메달을 기대했다.

특히 황병관은 4차례의 국가대표 선발전을 모두 우승한 놀라운 힘과 기량의 선수였다. 그는 런던올림픽 대회 1차전에서 벨기에의 쿨로(Coulot)선수를 완벽히 폴로 눌렀다.

그러나 심판은 이를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 해당 심판의 이런 편파 판정은 런던의 '엠파이어 뉴스'에도 그대로 게재돼 심판의 부당성이 알려졌다. 2차전은 무스타파(Moustafa)란 이집트 선수와의 경기였다.

그런데 매트 위에는 1회전의 그 심판이 다시 올라와 있는 것이었다.

심판은 또다시 황이 압도적 경기를 펼쳤음에도 그의 폴승을 인정하지 않고 결국 판정으로 갔다. 판정에서 결국 패하고만 그는 그대로 경기장을 내려왔다.

그로부터 68년이 지났다. 현대 스포츠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선수들의 수준이 평준화되었다는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이라면 심판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시간이 갈수록 심판은 더욱 공평해야하고 4년간 노력한 선수들의 조그만 억울함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심판은 경기의 지배자가 아니다. 경기의 지배자는 선수이어야 한다. 공평하지 못한 심판의 행동은 자체가 무력이고 선수에 대한 학살이다. 심판이 가져야할 필수 덕목, 바로 '중립을 통한 공정성'이 아닌가 한다. /서해대학교 스포츠복지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