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빗방울 하나가 / 차 앞 유리에 와서 몸을 내려놓고 / 속도를 마감한다 / 심장을 유리에 대고 납작하게 떨다가 / 충격에서 벗어난 뱀처럼 꿈틀거리더니 / 목탁 같은 눈망울로 / 차 안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 어떠한 사족(蛇足)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 사라진다' - 김주대 시인의 시 <가차없이 아름답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이 '가차없는' 것에 시인은 아름다움을 붙였다. 시인이 본 아름다운 광경이란, 빗방울이 차 유리창에 떨어지고 흘러내려 사라지기까지의 모습이다. '몸을 내려놓고', '심장을 유리에 대고', '목탁 같은 눈망울로' '어떠한 사족도 없이' 미끄러지는 빗방울. 이 가차없는 아름다움은 처연하다.

이 빗방울은 수많은 빗방울 중의 하나이며, 한 순간 미끄러져 사라지는 빗방울이다. 그 빗방울이 속세를 벗어난 듯 '목탁 같은 눈망울로' 그러나 끝내 속세의 어떤 것을 붙들고 싶어 '차 안을 한 번 들여다' 보지만, 끝내 떨치고 미련없이 '어떠한 사족도 없이' 미끄러져 사라지는 빗방울.

가차없다는 말, 참 매정하고 차가운 말인데 그 가차없음으로 모든 것을 쳐내고 싶을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어떤 것들. 그러니까 스마트폰을 손에서 좀처럼 놓지 않는다든가, 누군가의 기분을 살핀다든가, 끝내지 못한 소설을 들여다보며 한 숨을 쉰다든가, 통장의 잔고를 보고 계산기를 두드린다든가, 마트에서 더 싸고 좋은 것은 없나 둘러본다든가, 굽이 닳은 구두를 어찌해야 하나 하는 것들. 사소하고 사소해서 다 끊어 버리고 싶지만 그 사소한 것을 가차없이 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안 남을까봐, 내 존재조차 희미해질까봐 무서워 무엇이든 붙들고 산다. 번뇌를 만든다.

'어떠한 사족도 없이 미끄러져, 문득 / 사라'져야 아름다운데 나는 늘 현실에 매여 산다. 가차없이 무엇을 해낼 용기가 없다. 그러니 다독인다. 번뇌가 치열해질수록 보리심에 가까워진다고. 고통을 더 많이 느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고통에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다고. 가차없이 아름답게 살지 못해도, 이 세상 부대끼며 살자 한다. 그러다보면 작고 작아 보이지도 않는 어떤 것에도 감탄하고 감동하고,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기도 하지 않겠는가 다독인다. /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