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경 사회부장

하지(夏至)가 멀지 않았다. 때 이른 더위마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바닷가는 한 겨울이다. 꽁꽁 얼어붙은 시베리아 벌판이다.

세계 경기가 불안한 행보를 수 년째 이어가면서 항만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적 선사들도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있다. 바다를 주 무대로 하는 항만 관련 사업이 힘을 쓰지 못하며, 이제는 나라 경제의 골칫거리 취급을 받는 모양새다.

이렇다 보니 부산항, 광양항 등을 넘어 인천항도 옴짝달싹 못하는 분위기다. 특히 인천항에서도 항로를 운영 중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운명은 초미의 관심사다. 우리나라 해운업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경쟁적으로 운임인하가 이뤄졌고, 글로벌 해운 얼라이언스 재편도 가속화하고 있다.

한진해운의 경우 지난 13일 신생 해운동맹인 'THE(디) 얼라이언스'에 전격 합류했다. 독일 하팍로이드, 일본 NYK, MOL, K-LINE, 대만 양밍 등이 참여한다. 하지만 현대상선 용선료 협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한진해운 벌크선은 용선료를 못내 압류됐다가 풀려나는 굴욕을 최근 겪었다. 여전히 미래는 불투명하다.

그렇다면 누군가 의아해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인천~미주 항로 즉 원양항로가 달랑 1개인 인천항이 무엇이 문제냐고.

인천항에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점유율은 사실 높지 않다. 인천항 전체 45개 항로 가운데 각각 현대상선이 3개, 한진해운이 2개다. 이들의 물동량 점유율 역시 4%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현재 두 선사가 끼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다. 이렇다 보니 해양수산부가 국적 선사 사태 이후 연 대책 첫 회의에서 인천항만공사는 참석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인천항에서도 변변한 대책회의 하나 열리지 못했다. 인천항은 염원이었던 원양항로는 지난해 인천신항 개장과 더불어 유치에 성공했다.

현대상선이 1년째 운영 중인 이 항로는 인천항을 거쳐 칭다오, 상하이, 부산, 로스엔젤리스, 오클랜드 등을 거쳐 인천항으로 다시 돌아온다. 동남아시아와 중국 항로가 대부분인 인천항에서 미국을 잇는 첫 정기항로인 셈이다.

수도권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배후로 두고도 전통적인 벌크항 역할만 했던 인천항이 신항이라는 제대로 된 컨테이너터미널 구축과 함께 새 시대를 열게 될 것이다. 그 결과, 화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항로가 없어서 처리하지 못했던 화물을 조금씩 처리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건초, 오렌지, 자몽, 냉동육 등이 인천신항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그 만큼 인천항에서 원양항로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현대상선이 혹 인천항 항로를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인천항 원양항로는 전략적으로 유치됐다. 이는 국적 선사였기에 가능했다. 원양항로 유치 이후 화물도 점차 늘고 있다. 현대상선 항로 포기를 대비해 타 국적 선사들이 조심스레 줄을 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다.

전략적 항로 유치는 타 국적 선사들에는 불가능한 일이다. 일단 '돈'이 되지 않는 항로를 누가 개설부터 하려고 할 것인가. 인천항에서 인천~미주 화물을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안정적인 화물 처리를 위해서라도 추가 원양항로 유치는 필수다. 언제든지 화물을 보내고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인천항에 마련돼야 한다.

이것이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인천항이 관심을 두는 이유다. 현재 국적선사 구조조정은 우리 바다 미래를 내다보고 이뤄져야 한다. 한 개별 기업의 문제가 결코 될 수 없다. 이는 작게는 인천항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앞으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후퇴하느냐를 두고 갈림길에 서 있는 인천항이 먼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이은경 사회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