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학생 돕기 위해 지켜온 교육철학 '개천에서 난 용 만들자'


좋아하는 노래는 최성수 '동행'.
좋아하는 술은 소주와 막걸리.
주량은 시간만 허락한다면 얼마든지.
피부를 생각해 화장은 살짝.


남들은 잘 모르는 최순자(64) 인하대 총장 일상이다. 여자이자, 총장, 인천인 최순자를 만나봤다.

여자, 최순자

 


과학자라는 이름을 먼저 얻은 최 총장. 일반적인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삶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

최 총장은 52세라는 꽤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이유로 남들 연애할 때 제대로 연애 한번 못해봤지만 큰 아쉬움이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뒤늦은 결혼이 최 총장에게는 큰 위안이 되고 있다. 누구와 함께 삶을 공유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결혼 후에야 알게 된 것이다.

"사느라고 사실 연애도 제대로 못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니 좋은 풍경을 보면 누군가와 나누고 싶고,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요. 지금의 남편이 첫눈에 반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10년 동안 알고 지낸 사람이지요."

결혼 생활은 최 총장에게 또 다른 힘이 되고 있다. 집안일의 80%를 담당해주는 남편이 항상 고마울 따름이고, 좋은 풍경을 보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는 것이다.

'결혼을 좀 더 빨리할 걸'하고 후회한 적 없느냐는 질문에 최 총장 답변은 이렇다.

"지금까지 충실히 살아왔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그래도 그 연륜으로 결혼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아요. 결혼 후에 좀 더 긍정적인 사람이 됐지요."

손에 물 한번 묻혀 본적 없을 것 같건만, 집안 살림도 최 총장의 평소 성격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는 그야 말로 수준급. 공부하기 바빴지만 어머니 음식 솜씨를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컸단다.

최 총장은 두부 한모만으로도 뚝딱뚝딱 한 끼 해결이 가능하다. 두부에 갖은 양념을 덮어 밥하고 먹으면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삶의 현장에서 얻은 또순이라는 별명은 최 총장의 섬세함과 눈썰미가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곧 여자 최순자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그래도 집안 일 중 하기 싫은 것이 최 총장에게도 있다. 바로 설거지다.

"사실 설거지는 잘 못해요. 모든 걸 빨리하니까 남편은 제대로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설거지는 남편 몫이랍니다."

총장, 최순자

 


인하대 총장으로 그가 가진 타이틀은 두개다. 최초 여성이자, 모교출신 두번째 총장.

지난해 2월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대학 현안 파악과 발전 계획 및 전략 수립을 위해 재단, 교수, 직원, 학생, 동문, 지역사회 관계자들과 다양한 소통을 벌였다.

그 결과, 자신감을 얻었다. 모든 구성원이 혁신에 대해 공감하고 있고, 학교 직원들의 개선 노력이 눈에 띌 만큼 향상됐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총장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재단과 대학 간 관계 정립 중심에 있는데다 학교 구성원들의 팀워크도 끌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가 야심차게 추진한 일들이 구성원들의 반발로 난항을 겪기도 했다. 교과과정 개편에 이어 최근 4월 졸업식 개최 여부 등을 두고 찬반 여론이 뜨겁다.

학교를 위한 길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이를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들이 야속 할 만도 하건만, 최 총장은 그저 담담하다.

"사람 얼굴이 다 다르듯, 세상은 생각도 행동도 다른 사람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모든 일이 어떻게 잘 이뤄질 수 있을까요. 인하대에서 총장 역할은 어려운 의사 결정 때 합리적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잘 되리라고 믿습니다."

최 총장이 생각하는 인하대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특성화 전략을 이야기 한다.

▲교과과정 개편▲입학 및 졸업생 경쟁력 강화▲융합학문 강화▲신입생 교육 내실화 등 4가지다. 사회적 요구와 산업 수용 맞춰 교과과정을 개편하고 글로벌 산업 동향, 대한민국과 인천시 미래 산업 동향 등을 고려한 융복합 학문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하대가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 변화에 대한 선제적 대응과 특성화 전략입니다. 특성화 계획은 총장으로 임명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프로젝트 입니다. 이는 곧 인하대가 새롭게 도약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때 4·13 총선을 앞두고 최 총장 출마설이 지역 내에서 솔솔 제기돼 왔다. 정치인 최순자에 대해 물어봤다.

"사실 총장이 되기 전에는 정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었죠. 실제 비례후보로 나서기도 했으니까요. 그동안 학교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했고, 또 한계도 느껴 훌훌 털어버리고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제는 정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3년 정도 남은 총장직에 전념을 다할 생각이다."

그는 어느새 총장직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미국처럼 총장을 스카우트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제가 인하대 총장직을 맡으며 얻은 노하우를 다른 곳에서도 발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저는 정치인이 아닌 총장으로 남을 겁니다."

인천인, 최순자

인천 남구 학익동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자란 그가 인하대 총장이 된 것은 그야말로 운명이었다. 최 총장은 그가 태어난 곳이 현재 인하공업전문대학 운동장 쯤이라고 회상한다.

"미국에서 유학한 7년 반을 제외하고는 인천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인천에 대한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천을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천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사랑은 유정복 인천시장과 인연을 맺게 했다.

이전에 전혀 교류가 없던 유 시장이 당선인이던 시절, 시정업무를 준비하던 인수위원회 즉 '희망인천준비단' 단장으로 활동하기에 이르렀다.

"유 시장님과는 이전에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역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맡게 된 것이 준비단 단장이었습니다."

최 총장은 인천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기반이자 토양은 교육이다.

자신의 교육철학인 '개천에서 난 용을 만들자'처럼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지원을 벌이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인천지역에서 인하대가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빈부격차 상관없이 지역 내 중고등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는 곧 인천 자산이 될 테니까요. 인하대도 인천 발전에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글로벌 전문 인재를 육성해 배출해 지역 현안에 대해 전문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특히 현재 미국항공우주국(NASA)와 공동 연구센터를 건립해 인하대 송도산학협력관에 R&D센터를 유치할 예정입니다. 이 센터에 외국계 연구개발 센터가 유치되면 인천 경쟁력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인천을 떠날 수 없다는 최 총장이 인천인으로 전한 말은 이것이다.

"무엇을 하던, 인천을 떠나지 않고 인천을 위해 일할 겁니다."


/글 이은경 기자 lotto@incheonilbo.com
/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