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단체 입회원서 취미란에 '문(門) 감상'이라고 쓴 적이 있다. "취향치곤 참 별 나네"했을지 모르지만 필자는 남의 집 문을 살펴보는 게 즐겁다. 가끔 집주인의 호통을 듣긴 하지만 로댕 조각품이나 피카소 그림 감상 못지않다. 개인 주택의 문은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그 앞에 서면 절로 웃음이 나오는 문이 있는가 하면 왠지 숙연해지는 문도 있다.

오래된 대문에는 다양한 부착물이 희미하게 붙어 있다. 가옥번호, 수도번호 심지어 그 집의 변소 용량 패찰도 박혀 있다. 00교회, 00성당, 불자의 집 등 종교 표찰을 거리낌 없이 대문에 못박은 나라는 우리 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에는 '유공자의 집' 표찰을 자주 접한다. 동구 송림동 어느 집 대문에는 아예 커다란 보훈 유공자 공로패까지 붙여 놓았다.

초인종은 대문의 필수 장치였다. 요즘은 문마다 번호키가 달려 있지만 예전에는 밖에서 문고리를 풀 수 있는 노끈이나 손잡이가 있었다. 이것만 돌리거나 당기면 옆집 친구나 화장품 외판원도 '제 집 드나들 듯' 할 수 있었다. 잠금장치라고는 빗장이 전부였다. 개를 기르던 그렇지 않던 이집 저집 대문에 붙은 '개조심'은 이것을 보조하는 중요한 장치였다.

문은 우리의 공간과 타인의 공간을 가르는 경계이자 낯선 기운을 막는 첫 보루다.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큰 재앙을 피했던 이스라엘 민족처럼 귀신을 쫓기 위해 우리네 대문에는 가시 돋은 엄나무나 마른 북어를 명주실로 묶어 올려놓았다. 요즘도 후미진 골목에서 이러한 '퇴마' 대문을 심심치 않게 만난다.

각양각색의 대문은 그 동네의 역사를 말한다. 중구 사동 골목의 양철지붕 대문들은 그곳이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단 거주지였음을 설명한다. 율목동의 몇 채 남지 않은 한옥 대문에서는 꼿꼿한 인천 선비의 풍모를 느낄 수 있다. 동구 만석동의 허름한 베니어판 문에서는 피난민의 고단한 삶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15년간 인천 골목의 문을 감상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그것을 추려서 '사진전 밀門썰門'을 내일부터 중구 차이나타운 한중문화관 갤러리에서 연다. '문(門) 감상'이 취미인 '별종'들의 관람을 적극 환영한다. /굿모닝인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