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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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윤종구

인도는 부조리와 불평등이 가득한 곳이라 느끼며 내 속에 흐르는 반골기질의 유전자로 인해 머릿속이 혼란스러울 즈음 난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소똥 말리는 모습이었다.

인도에서 소똥 말린 것은 땔감으로 쓰이니까 그냥 소똥 말린 거려니 하고 지나치며 보았는데 마치 작은 집을 짓듯이 차곡차곡 쌓인 소똥은 그냥 말린 것이 아니었다. 피자처럼 펴서 말린 소똥에 문양이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 장난삼아 문양을 넣었다고 생각하기엔 이상하리만큼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심지어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의 작품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디자인돼 있었다. 그 동네에서만 유난히 그런 사람이 있어 문양을 넣은 것이 아니었다.

인도 어디를 가더라도 거리에 쌓여있는 대부분의 소똥건물(?)들은 서로 다른 문양과 결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것들이 반복돼 내 앞에 보여지다보니 내가 뒤늦게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아, 이토록 대책 없이 낭만적인 사람들을 봤나…!"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이기적으로만 인도를 바라보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내가 보는 시선이 전부인 양 혼자서만 불만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체념한 것이 아니라 달관했다고 하는 게 맞다. 그저 삶을 아름답게 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곳이 어디이고 어떤 곳이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에게는 그저 어떻게 현재를 즐기고 삶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다.

처음 인도에 갔을 때 당황스럽던 풍경과 일상들을 그제서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어디에서나 마주치는 소들(종교적 이유로 인도인들은 소를 중요시하는데 소들은 사람보다 먼저다. 잘 가던 차들이 밀리기 시작하면 90프로는 소떼가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변의 모래사장에서도 소들은 일광욕을 하듯 누워 있기까지), 수많은 노상방뇨의 흔적과 각종 동물들의 배설물(물론 여기엔 사람의 것도).

두 세 시간 연착은 허다한 교통편들(비행기는 대체로 정확한 편임), 주문하면 나올 줄 모르는 음식들(6명이 주문을 하면 한 번에 다 나오는 게 아니고 천천히 따로 따로 음식들이 나온다), 고속도로에 돌아다니는 모든 종류의 탈 것들과 움직이는 모든 것들(동물포함). 뭐 좀 궁금해서 물어보면 흔히들 하는 대답. "그것은 신만이 알고 있지…" 딱 일주일이면 받아들이게 된다. "여긴 인도니까…"하면서.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런 것들을 더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돌아오니 가슴 한 켠이 허전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집밖을 나가면 소 한마리쯤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집 앞 골목길엔 아슬아슬하고 빼곡하게 주차된 차들 뿐이다. 왜 갑자기 우리나라의 시스템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난 인도에 불과 한 달 남짓 머물다 왔을 뿐인데…

다 좋다. 그런데 말이다. 나한테 문제가 생겼다. 아주 심각한… 한국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됐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 여긴 인도가 아니지…"하면서도 현실적으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 다녀온 인도보다 40년을 넘게 사는 이 나라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인디아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당최 적응이 되질 않는다.

"빨리! 앞만 보고 가! 네가 힘들게 사는 건 국가의 탓이 아니야. 노력이 부족해서야! 노오오오오오오오오력해! 헬조선? 흙수저? 헛소리 하지마! 그 시간에 스펙이나 쌓으라고! 잘 살아 보세!" 거리에 나가면 거대한 확성기에서 이런 멘트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다. 닥치고 경제를 외쳐대는 사회 분위기에 숨이 콱콱 막힌다.

"그래, 내가 노력이 부족한 거겠지…괜히 엄한 나라 탓만 하고 있는 거겠지…" 이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고된 현실의 이유를 내 탓으로 돌리려하는데 울컥울컥 솟구치는 울분이 있다. 무의식의 저편에서 올라오는 이런 분노의 원인을…나도 모르겠다. 이건 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어떻게 털어내야 한단 말인가?

어딘가를 향하는 거리의 차들을 막고 물어볼까? 나한테 미친놈이라고 하겠지? 그래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좋으니까 한번 물어나 봐야겠다. 저기 앞만 보고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딱 한번만 물어나 봐야겠다. "저기요…바쁘신 와중에 대단히 죄송합니다. 하나만 물어보고 싶어서요. 저기…그런데 지금 잘 가고…계신 거죠? 안녕들…하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