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PDP TV 화면에는 그라운드의 테리우스 안정환의 반지 키스 세리머니가 클로즈 업 됐다. 온통 붉은 물결이 출렁였다. 어린이였던 아들, 딸이 하늘을 향해 브이(V)를 펴 보인 액자 속 사진에서 그날의 감격을 회상한다. 얼굴에 그린 태극기 문양의 페이스페인팅도 빛났다.

'Be the Reds'가 새겨진 붉은 티셔츠와 두건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자부와 긍지의 상징이었다. 국민 모두가 축구 국가대표의 12번째 선수였다. 거리 좌판에서 짝퉁 '비더레즈'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짝짝 짜자작' 박수 다섯 번을 치고 양손을 쭉 펴 '대~한민국'을 외쳤던 응원은 지금도 잊지 않았다.

한일 공동개최 월드컵이 열린 2002년 6월의 대한민국은 뜨거웠다. 월드컵 4강 신화를 만든 한국 축구와 '붉은 악마'의 응원은 인생 일대의 희열과 감동이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 기간 동안 일곱 번의 경기를 치렀고, 국민의 절반에 이르는 2400만 명이 거리응원에 나서는 진기록을 세웠다.

붉은 악마의 카드섹션 문구도 화려했다. 16강에서 만난 강호 이탈리아를 상대로 'AGAIN 1966'을 새겼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북한이 이탈리아를 1대0으로 누른 이변이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승리로 나타나기를 기원했다. 스페인과의 8강전은 'PRIDE OF ASIA'였다. 아시아에서 8강에 오른 국가는 오직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터키와의 3-4위전에서도 대학 캠퍼스 광장에 마련된 대형 중계 스크린 앞에는 수많은 군중이 모였다. 특히 '붉은 악마'는 우리 국민의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전국 규모의 조직으로 결집돼 전통적인 축구의 고장 남미와 유럽, 일본의 울트라 닛폰 응원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세계적인 응원문화를 창출했다. 월드컵 우승을 상징하는 별모양을 그린 '꿈★은 이루어진다'는 표현처럼 2002 월드컵은 우리 민족에게 엄청난 활력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감동의 드라마였다.

하지만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릴 2002 FIFA 한일월드컵 결승 하루 전의 사건은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우리나라와 터키의 3-4위전을 앞둔 6월29일 오전, 서해 연평해상에서 남북한 함정의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의 선제 기습 포격으로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의 조타실은 순식간에 화염으로 휩싸였다.

그날 서해 바다에서 피 끓는 6명의 해군 장병들이 산화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리더십이 월드컵 열기를 이어갈수록 우리는 제2 연평해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13년이 흐른 지금 초등학교, 유치원에 다니던 아이들이 군대에 가게 되고, 대학생이 됐다. 김학순 감독이 제작한 '연평해전'을 보고 비로소 감동의 월드컵 뒤에 가려진 뜨거운 눈물을 서로 이야기하게 됐다.

'연평해전'의 누적관객수는 28일 현재, 595만4746명으로 6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슬픈 영화라고 했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스낵 코너에 비치하는 휴지가 평소보다 빠르게 소진된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Closing Credits)을 보며 젊은 청년들이 거수경례로 전사하거나 다친 연평해전 용사들을 응원했다고 한다. 130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가슴이 먹먹했다.

요 얼마 되는 동안 벅찬 감동으로 눈물을 훔친 두 편의 한국 영화가 생각났다. 노부부의 애틋한 노년의 사랑을 그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고통의 100단계 중에서 첫 째로 꼽히는 배우자의 죽음에 대한 과정이며, 참기 어려운 극한의 아픔을 달래는 가장 슬픈 눈물이었다.

'국제시장'은 가슴 미어지는 가족과의 이별, 그리고 인생 역경을 헤쳐 나온 두렵고 속상할 때 흘린 눈물이며, 절망을 극복해 나간 가장 기쁜 눈물이 아니었을까. '연평해전'의 눈물은 무엇인가.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킨 분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며, 분단의 아픔 속에 억눌린 억울하고 화가 난 눈물이었다.

제작비 확충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을 시도하고 7년의 긴 여정 끝에 <연평해전>은 흥행의 주인공이 됐다. 예상 외로 20~30대 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여성 관객비율이 압도적이라는 조사도 있다.

눈물의 감정은 더 깊이 기억에 새겨지고, 잊혀진 것에 대한 회상은 더욱 뚜렸해진다. 대학 동문이기도 한 김 감독을 만난 지난 금요일 오전, 그가 교수로 봉직하는 서강대 영상대학원 캠퍼스에는 한가로운 빗방울이 오고 갔다. 연구실 문에 붙인 '연평해전' 포스터가 웃고 있다.

잊혀져서는 안 될 과거의 역사를 찾았다. 공무상 순직으로 처리된 전사자들을 생각하면 다시 또 눈물이 난다. 붉은 악마의 함성처럼 대한민국과 국민의 일체된 마음속에 '연평해전'은 부활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평안과 자유를 위해.